한국일보

“당신의 감정을 믿을 수 있나요”

2019-04-15 (월) 박찬효 약물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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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감정을 믿을 수 있나요”

박찬효 약물학 박사

인간의 사고, 말, 행동의 결정요소는 지, 정, 의이다. 요사이 급속도로 인공지능(AI)을 가진 로봇의 역할이 커지지만 아무리 스마트한 로봇이라도 정(감정, 느낌)을 가질 수는 없을 것이다. 감정은 실로 다양하여 기쁨, 슬픔, 미움과 노여움, 수치심, 죄책감과 후회감, 억울함, 두려움, 외로움과 우울감 등 여러 종류이다. 이 중에서 특히 실수 혹은 고의로 잘못을 저지르고 나서 느끼는 후회감과 죄책감에 대해 생각해본다.

인간이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양심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만일 반복되는 잘못에도 후회와 죄책감이 들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영혼은 중병을 앓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 한편 우리가 느끼는 이 감정들이 근거가 있는 것인지, 타당한지, 또는 신뢰할만한 것인지 살펴보는 것 또한 중요하다.

제임스 답슨 목사의 ‘당신은 감정을 믿을 수 있나’라는 책에서 읽은 한 사건을 소개한다. 한 엄마가 어린 딸의 손을 붙잡고 횡단보도의 파란불을 기다리던 중 생각 없이 딸의 손을 놓았고 그 딸이 길을 건너다 자동차에 치여 죽었다. 슬프고 안타깝고 비극적인 사건이지만 자기가 딸을 죽였다는 심한 죄책감에 못 견뎌하는 그 엄마의 죄책감은 정당하고 신뢰할만한 감정일까?


얼마전 지인의 아들이 학교에서 심한 왕따와 폭력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인은 회사일로 너무 바빠 10대 아들에게 충분한 관심을 쏟지 못해 일어난 비극이라며 아들의 죽음은 자기 탓이라는 죄책감으로 오랫동안 심한 고통을 겪었다. 다행히 신앙으로 아픔과 죄책감을 극복했고, ‘청소년 폭력예방재단’을 설립하여 사회봉사에 전념하는 것으로 승화시켰다.

최근에 들은 안타까운 이야기는 장애인들을 집회 후 집에까지 데려다주던 자원봉사 운전자가 한 정신지체 소녀를 그 집 건너편에 내려놓았는데 길을 건너다 자동차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는 사연이다. 장애우 봉사를 5년 이상 해오던 그가 느낄 심한 후회와 자책감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순간적 사고이므로 빨리 죄책감에서 벗어나기만을 바랄뿐이다.

인간은 흠이 많고 불완전한 존재다. 혹시 우리가 너무 완전해지려는 망상 때문에, 우리의 약점이 타인에게 노출될 것을 우려하여 자기의 감정을 억누르고, 감추려고 전전긍긍 한다면 그 삶은 아주 피곤할 것이다. 또한 우리는 늘 우리가 느끼는 감정의 그 근거와 동기를 성찰하여 혹시 조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으려는 헛된 기대감, 혹은 지나친 자기중심적, 이기적 태도가 그 감정의 원인이라면 그것을 매일 버리는 연습이 필요할 것이다.

<박찬효 약물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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