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알파 피메일

2019-04-13 (토) 정윤희 샌프란시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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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사업을 하다가 어렵게 된 시기가 언니는 대학생, 나는 고3, 두 동생은 각각 초등학생, 중학생 때였다. 있는 재산 다 날린 것도 부족해 큰 빚을 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아버지는 그 충격으로 한국을 떠나 외국으로 나가버리셨다. 형편이 어려워지면 경제적인 어려움도 큰 문제지만 관계가 좋았던 지인들의 배신과 그로 인해 무너지는 자존감은 엄청난 상처로 남는다.

엄마는 초등학생부터 대학생인 아이가 줄줄이 넷이나 되고 더군다나 남편도 떠나버린 가정의 가장으로 모든 어려움을 참아내며 살아야 했다. 험악하고 고단하기 이를 데 없는 상황임이 분명한데도 우리 앞에서 단 한 번도 눈물을 보인 적이 없다.

남편 없이 아이들하고 뭐라도 해서 먹고 살아야 되지 않겠냐며 한 지인이 내주신 종자돈으로 엄마는 허름한 식당을 차렸다. 밤낮없이 매달리며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어느 날 엄마는 “나 빚 다 갚았다”며 이제 우리 집에 빚이 한푼도 없음을 선언했다. 아버진 그 빚을 언제 다 갚냐고 절망하며 떠났지만 엄마는 혼자 그 역경을 꿋꿋이 견디며 가정을 일으켜 세웠다.


본인의 명예회복을 위해, 자식들의 앞날을 위해 몸부림치며 헤쳐 나왔던 엄마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앞을 가린다. 나는 그런 강인한 엄마를 통해서 어떤 상황에서도 쓰러지지 않는 법을 알게 됐다.

알파 메일은 늑대 무리를 이끄는 최고 우두머리 수컷을 말한다. 카리스마로 완전한 권력을 쥐고 호전적으로 집단 무리를 이끄는 강한 이미지의 남자를 말하기도 한다. 옐로우스톤에서 늑대 복원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생물학자 덕 스미스는 알파 메일이 당연히 보스라 생각돼왔는데 연구가 진행되면서 어디로 움직이고, 언제 쉬고, 사냥을 어디서 할지를 결정하는 게 알파 피메일(female)이었음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힘 있는 알파메일을 움직이는 알파 피메일의 역할이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살다보면 앞이 캄캄한 시절이 왜 없겠나. 위기를 잘 극복하여 온전한 가정을 지켜내려면 어느 집이든 엄마가 강해야 된다. 아이들에게 어떤 엄마로 남고 싶은가? 강한 엄마, 위대한 엄마로 남아 인생의 어려움에 직면할 자식들의 삶에 끝없는 에너지원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정윤희 샌프란시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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