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로보콜’죽이기

2019-04-1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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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는 대표적인 문명의 이기다. 10여년 전 스마트폰이 나온 이후 스마트폰 중독자를 양산할 정도로 전화는 현대인의 필수품이 돼 버렸다. 그러나 전화는 편리하지만 귀찮기도 한 물건이다. 그 중에서도 로봇처럼 자동으로 전화를 걸어 미리 녹음해둔 메시지를 전달하는 ‘로보콜’ 은 가장 큰 골칫거리다.

연방 통신 위원회(FCC)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동안 미국인에 걸려온 로보콜 수는 478억 통에 달한다. 이 중 46%가 스팸 전화였다. 미국 인구가 약 3억 명이니까 1인당 한 해 평균 90통의 스팸 전화를 받는 셈이다.

FCC는 이들 스팸 전화 발신자에게 2억 달러에 달하는 벌금을 물렸으나 거둬들인 돈은 6,700여 달러에 불과하다. 이들이 돈을 내지 않을 경우 징수를 강제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또 이들 중 상당수는 해외에 본부를 두고 있어 돈을 받아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소비자들은 그냥 눈뜨고 당해야만 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그 첫 번째는 연방 정부에서 운영하는 ‘전화 불원 리스트(Do Not Call)’에 등록하는 것이다. 여기에 등록해도 큰 효과는 없다. 이를 통해 막을 수 있는 상대는 합법적인 기업인데 로보콜의 절대 다수는 불법이거나 정체를 감춘 조직이다.

두 번째는 전화회사를 이용하는 것이다. 주요 통신사들은 로보콜을 막는 자체 앱을 개발해 나눠주고 있다. AT&T는 ‘콜 프로텍트’라는 앱이 있고 스프린트는 ‘프리미엄 콜러 ID’, T모빌은 ‘스캠 블락’, 버라이존은 ‘콜 필터’ 서비스가 있다. 이것으로 부족할 때는 ‘노모로보’(Nomorobo)나 ‘하이야’(Hiya) 같은 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는데 그럴 경우 내가 누구와 통화했는지 기록이 제3자에 유출될 가능성이 있다.

로보콜을 증오하는 사람은 ’로보킬러(RoboKiller)‘ 서비스를 이용할 수도 있다. ‘로보킬러’는 스팸 전화가 오면 이를 받아 미리 녹음한 내용을 상대방에게 들려줌으로써 상대방의 시간을 뺏고 다른 사람에게 전화하는 것을 방해한다. 이 앱은 2015년 FCC로부터 우수성을 인정받아 2만5,000달러의 상금을 받았다.

자기 전화기 세팅을 통해 스팸 전화를 원천봉쇄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스팸 전화 발신자들이 수시로 전화번호를 바꾸기 때문에 그 때마다 이를 추가로 등록해야 하는 불편이 있다.

쓸데없는 전화가 자꾸 온다고 전화번호를 바꾸는 것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로보콜 발신자들은 무작위로 수많은 번호를 새로 만들어 걸거나 통화내역을 수시로 조회해 새로 생긴 번호를 찾아 걸기 때문에 아무리 번호를 바꿔봐야 수일 내 스팸 전화가 걸려오기 마련이다.

로보콜을 막기 위해 최근 선보인 기술이 있다. 스팸 발신자가 신분 세탁한 것을 추적해 진짜 고유번호를 밝혀낸 후 이를 원천 봉쇄하는 ‘STIR/SHAKEN” 기법이다. 아직 AT&T에서만 시험적으로 운용되고 있지만 이것이 광범위하게 채택되면 로보콜 방지에 상당한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연방상원은 11일 로보콜을 근본적으로 방지하기 위한 청문회를 열었다. 로보콜 근절까지는 갈 길이 멀지만 현대인의 정신건강을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일이다. 워싱턴과 하이텍 업체가 힘을 합쳐 속히 이 숙제를 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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