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주민의회 선거로 본 시민의식

2019-04-11 (목) 이서희 전 LA 민주평통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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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의회 선거로 본 시민의식

이서희 전 LA 민주평통 회장

LA시의 지역주민의회(Neighborhood Council) 대의원 선거가 최근 실시되었다. 매년 홀수 년에 새 대의원을 선출하는데 이번 선거에서 이에 대한 한인들의 관심이 많이 높아져있음을 보여주었다.

윌셔센터 코리아타운 주민의회의 경우 지난 4일 26명의 대의원을 선출하는 선거에 한인 22명이 입후보하여 16명이 선출되었다. 2년 전의 선거와 달리 올해는 투표 참여자가 4배 가량 늘었다고 한다. 이런 추세는 지역주민의회에 대한 한인들의 의식이 무관심에서 적극적인 참여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LA 지역주민의회는 1999년의 시 헌장에 설립근거를 두고 있다. 주민 최소 2만명을 한 단위로 각 주민의회가 지역을 대표할 수 있고, 설립 시에는 시의 공인(certification) 절차가 필요하다. 현재 LA시에는 96개 주민의회가 활동 중이다. 주민의회의 목적을 보면 시 운영에 대한 주민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여 시 예산에 대한 토론기회, 시 이슈 및 프로젝트에 대한 의견제시를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각 지역의 현안 즉 범죄, 도로, 갱, 경제문제에 대한 토론의 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같은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한 근거는 일정 지역 내의 거주자들이 어느 누구보다 그 지역에 대하여 제일 많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LA시는 노숙자 문제와 거리에 방기된 쓰레기 처리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 문제를 시에서 해결해주기를 기다리다가 주민들이 지치고 있는 실정이다. 주민의회에서 이와 같은 현안을 조속히 해결할 수 있도록 목청을 높일 수 있을지 기대해봄직하다.

한인사회가 그간 겪은 사건을 돌이켜보면 1992년에 발생한 LA 4.29 폭동 때 한인타운의 피해를 대변해줄 수 있는 한인 대표가 부족하여 주류사회에 억울함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 주류사회에서 한인사회를 대변할 대표의 필요성이 절실하다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 정계에 진출하는 한인 후보자에 대해 커뮤니티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이 이루어져 왔다.

2018년 또 한 차례 한인사회를 결집시킨 사건이 있었다. 윌셔센터 코리아타운 구역을 양분하여 북쪽에 속한 부분을 방글라데시 타운으로 하겠다는 청원 안건에 대한 주민투표에서 반대의사를 표시한 한인 유권자가 1만8,000명이나 됐다는 놀라운 사실은 한인들이 지역정치에 무관심할 것이라는 선입관에 경종을 울린 사건이었다.

노숙자 문제에서도 지역주민의 의견수렴을 무시하고 시행하려던 시정책에 항의하여 윌셔 블러버드에서 수차례에 걸친 시위에 1,000-2,000명이 운집하며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그 결과 노숙자 셸터가 한인타운 중심에 들어서는 것을 막게 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지역에 관심을 가지고 부당한 일에 대해서는 합심하여 시정을 요구할 때 목적한 바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참여의식의 중요함을 절실하게 느끼게 된 것이다.

지역사회 현안에 참여하는 통로인 주민의회는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풀뿌리(grass root)의 소리인 민의를 알려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는 주민의 참여의식이 제고될 때 가능하다. 남이 대신 목소리를 내면서 해주기를 바라고 있으면 지역에 당면한 문제해결은 지연 내지는 무산될 우려가 있다.

한인 이민역사가 이미 100년이 넘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미국에서의 삶 자체가 이제는 주어진 것을 누리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드는데 일조하는 마음으로 사회를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한인들의 주류사회 진출과 아울러 각 지역사회에서 개개인의 참여의식에 따른 현안 해결은 또 다른 실제적인 효과를 가져다줄 것이다.

<이서희 전 LA 민주평통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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