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권력과 수명

2019-04-11 (목)
작게 크게
재선에 성공해 2013년 1월 취임식을 가진 오바마 대통령의 사진을 그가 처음 대통령으로 취임했던 2009년 당시 사진과 비교한 뉴스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2013년의 오바마는 2009년 오바마에 비해 ‘폭삭’ 늙어있었다. 주름은 훨씬 깊게 패였고 머리는 서리가 내려앉은 것처럼 보였다. 물리적으론 4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노화의 정도는 그 시간을 훨씬 앞질러 있었다.

이런 변화는 역대 미국 대통령들의 사진에서 거의 예외 없이 나타난다. 앳된 얼굴로 백악관에 들어갔던 클린턴은 백악관을 떠날 때 백발이 돼 있었다. 미국 대통령들의 빠른 노화를 놓고 “보통사람들은 매년 1년씩 늙지만 대통령은 매년 2년씩 늙어간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미국 대통령은 끊임없이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자리다. 국내문제뿐 아니라 세계 최강국의 지도자로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압박감에 항상 짓눌린다. 언론과 야당으로부터는 거친 비판과 공격을 받는다. 누리는 권력의 크기만큼 큰 책임과 스트레스에 상시적으로 놓이게 된다. 그러니 보통사람들보다 빨리 늙는 게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이처럼 권력은 달콤하고 유혹적이지만 노화와 수명에는 그리 긍정적 요소가 되지 못한다. 역대 조선왕 27명의 평균수명은 46.1세였다. 일반 백성들보다는 오래 살았지만 최고의 의료혜택과 명의들의 보살핌을 받은 것 치곤 그리 오래 살았다고 보기 힘들다. 지나친 호색과 과잉영양, 운동부족 등 현대 의학적 관점에서 지적할만한 문제점들이 많다.

여기에 더해 빠뜨려서는 안 될 원인은 과도한 스트레스다. 왕은 절대 권력을 갖고 있는 자리처럼 보이지만 신하들의 끊임없는 견제에 시달렸다. 게다가 정통성이 취약한 왕들은 콤플렉스로 괴로워했다. 실록을 보면 유독 피부병으로 고생한 왕들이 많았는데 스트레스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한국의 재벌총수들도 절대 권력자들이다. 이들이 권력을 행사하는 방식은 마치 왕조시대를 방불케 한다. 하지만 막강한 권력과 부를 움켜쥐고 있음에도 재벌총수들의 평균수명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 한 조사에 따르면 이들의 평균수명은 77세이다. 한국인 평균수명이 80을 훌쩍 넘어버린 시대에 77세는 오히려 단명이라 할만하다.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위치에 올라 있지만 이들의 처지는 일반인들의 상상만큼 행복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기업 안에서는 제왕처럼 군림하지만 정치권력 앞에서는 작아지는 게 재벌총수들이다. 재벌들끼리의 순위경쟁도 장난이 아니다.

특히 2세들의 경우 선대의 업적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많이 짓눌린다. 선왕 필리포스의 업적을 능가하려 자신을 몰아붙였던 알렉산더 대왕을 빗대 ‘알렉산더 증후군’이라 불리는 심리상태를 말한다. 알렉산더는 33세에 열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지난 7일 향년 70세를 일기로 갑작스레 별세했다. 말년에 여러 일들로 마음고생을 겪으면서 지병이 급속히 악화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총수로서 한참 더 일할 수 있는 나이에 세상을 떠나 안타깝다. 돈과 권력으로도 늘리기 힘든 게 수명이란 것을 재벌총수들의 평균수명은 다시 한 번 깨우쳐 준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