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누구를 위하여 벽화는 말하나

2019-03-28 (목) 12:00:00 박영남 광복회 미국서남부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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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하여 벽화는 말하나

박영남 광복회 미국서남부지회장

일제의 잔학행위를 떠올리게 하는 벽화가 로버트 F. 케네디를 기념하는 역사적 장소인 RFK 고등학교에 전시되어 있다.

몇 달 전 한인들의 반대로 벽화 철거를 약속했던 LA통합교육구는 주류 예술평론가가 제기한 예술가의 표현의 자유 침해 주장에 밀려 철거 결정을 미루고 있다. 언제까지 우리는 기다려야 하는가?

순수한 예술작품에 대한 지나친 반응으로 넘기고 말 것인가, 아니면 코리아타운 한복판이라는 벽화의 위치로 보아 신중한 고려가 따라야 하는가?


코리아타운에 살고 있는 이들 가운데에는 1910년부터 1945년 일제의 한국 강점기 중에 살던 주민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들의 후손인 한인 2세와 3세들도 한인타운에서 종종 만난다. 초기 이민세대는 고국의 독립과 시민의 자유를 위하여 생명까지 걸면서 활동한 비상한 용기를 지닌 인물들을 배출했다. 우리는 이들을 독립운동가라고 부른다.

여러 면에서 이들은 명예와 희생의 이야기를 지닌 미국의 ‘위대한 세대’의 한국판 위인들이다. 미국사람들이 그들의 위대한 세대를 존경하듯이 우리 한인들도 우리의 독립운동가들을 존경한다.

일본정부는 아직도 제국의 과거를 깨끗이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현 정부가 보여주는 미지근한 유감 표명과 전쟁 시의 악행과 그 유산을 축소하려는 역사 수정주의적 태도는 한국과 아시아 여러 나라들과의 화해를 방해하게 하고 있다. 그래서 코리아타운 내 한인주민의 다수에게는 과거의 고통스런 체험이 아직 지나간 일이 아닌 채 여전히 상처로 남아있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로버트 케네디 고교의 벽화 문제를 바라본다. 예술가의 의도를 오판하거나 다른 지역에 있는 모든 작품의 햇살 디자인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다. 예술가의 자유로운 표현의 정신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많은 한국인들이 식민통치 하에서 쟁취하려고 투쟁했던 바로 그 것이다.

코리아타운이라는 지역이 한국 독립운동에 헌신한 선조들의 희생도 돌아보고 그 목소리도 인정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들이 지난날 자유를 위해 투쟁한 이야기들도 지역사회의 벽화에 반영되어야 하지 않을까. 최소한 그 정도는 지역주민들을 존중하며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용기있는 사람들’이란 저서에서 남북전쟁의 와중에서 미국이 나아갈 바를 몰라 헤매고 있을 때 비판의 홍수 속에서도 나라를 위하여 최선의 선택을 한 8명의 상원의원들의 용기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한인타운의 역사도 마찬가지이다. 그 안에는 용기있는 사람들이 있었고 현재 살아있거나 죽었거나 그들은 일본식민시대의 박해에 대항해 투쟁했고 자유를 위해 몸 바쳤다. 그들의 이야기는 코리아타운 거리를 걷고 있는 후손들의 마음과 정신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코리아타운 안에는 여러 다양한 견해가 있고, 일치된 견해에 이르기까지는 상당한 과정이 있을 수도 있다. 때로 타운의 목소리들이 너무 빨리 쓸려버릴 수도 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 커뮤니티는 여전히 갈 길을 찾고 있다.

그러나 16세기 영국의 시인 존 던(John Donne)이 그의 시에서 지적한 것처럼 사람은 아무도 섬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대륙의 한 부분이고 전체의 일부이다. 우리가 비록 작은 조각의 땅이라 할지라도 만약에 무시한다면, 우리는 점차 작아지고 결국에는 씻겨 없어지고 말 것이다. 이 시의 마지막 부분은 이렇게 끝난다. “그러므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알려고 사람을 보내지 말라. 그것은 그대를 위하여 울린다.”

로버트 케네디 고교 벽화의 결말이 어떻게 나든지 앞으로의 결정은 우리의 역사를 존중하고 커뮤니티의 예술가들과 모든 주민들을 합당하게 고려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이제 누구를 위하여 벽화는 말할 것인가.

<박영남 광복회 미국서남부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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