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민주주의 - 가장 덜 나쁜 제도

2019-03-23 (토) 김순진 교육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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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투표자와 5분만 대화를 나누어보면, 민주주의가 참 나쁜 제도라는 것을 금세 알아차리게 된다.”

나치 독재에 대항해서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어, 민주주의의 수호자로 추앙받고 있는 영국의 총리 처칠의 말이다.

나 역시 한심한 ‘일반 투표자’ 중 한사람이지만 한국과 미국의 정치현실을 보면, 처칠의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높은 자리에 있는 정치인들은 모두 인격과 역량을 겸한 애국자이며, 국민들은 모두 옥석을 가릴 줄 아는 현명한 유권자라는 믿음에서 깨어난 지 오래지만, 그래도 현재 두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태를 보면 정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다.


두 나라 모두 진보와 보수의 세력으로 양분되어서, 타협과 협동 대신 증오와 대립의 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정치인들은 물론 일반 국민들도 반대파를 겨냥한 공격과 독설을 계속 쏟아 내고 있다.

같은 후보를 놓고 한쪽에서는 사상 최고의 ‘위대한 지도자’로 떠받들고, 반대쪽에서는 ‘범죄자’라는 등 듣기에도 섬뜩한 말로 매도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여론의 양극화는 예전부터 있었던 현상이지만, 요즈음은 범위도 넓어지고 정도도 심해지고 있다.

민주주의의 기본인 전 국민 참정권은 한국의 경우 일본 식민지에서 벗어나 대한민국이 수립 되면서, 미국에서는 100년 전 여성의 투표권이 허용되면서 비로소 실현되었다. 수천년 인류 역사를 통해서 오직 한정된 계층만 국가 통치권을 쥐고 이에 따른 특권을 누릴 수 있었던 모순을 청산하고, 성인 국민 모두가 참여하는 투표를 통해서 지도자를 선출하는 제도는 혁신적이면서 이상적인 제도로 국민의 큰 기대 하에 출범하였다.

유감스럽게도 현장에 적용해본 전 국민 참정권은 평등하고 공정한 사회를 이루는데 필요하지만 충분치는 못하다는 것이 곧 드러나고 말았다. 전 국민 모두 동등하게 한 표를 행사한다는 이상적인 제도 안에는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올라간다”는 역기능의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종, 성별, 출신지역, 성장배경, 교육정도, 재산상태에 따라 국민들 사이에 대립적 이해관계 가 형성되고, 여기에서 파생된 편견이 사람들 마음속에 깊숙이 자리 잡으면서, 전체의 이득보다는 각자 개인의 이득을 보호해줄 정책을 밀어붙이려는 현상이 자리잡게 되었다. 처칠이 지적했던 ‘일반 투표자’의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이해관계를 둘러싼 국민들의 갈등과 대립보다 더 위험한 것은 바로 이런 혼돈사태에서 탄생한 강력한 지도자의 영구집권 욕심이다. 전 세계에는 민주주의를 내세워서 당선된 권력자들이 재선, 3선, 4선을 넘어 영구 대통령으로 가는 예가 적지 않다. 현재 아프리카 대륙에는 30년 이상 대통령 직을 고수하면서 결국 종신대통령으로 생을 마칠 가능성이 있는 나라들이 여럿 있다.

이들 대부분이 ‘민주주의’를 내세우고, 선거를 통해서 당선된 대통령들이다. 이런 가짜 민주주의 독재국가의 국민들에 비하면 한국과 미국의 국민들은 참 운 좋은 국민들이다. 아무리 훌륭해도, 또는 고약한 대통령이라도 5년이나, 최대 8년이면 자리에서 물러나야 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역사상 존재했던 여러 나쁜 제도 중에서 가장 덜 나쁜 제도이다.”

체험을 통해 민주주의의 장점, 단점을 꿰뚫어보고 내린 처칠의 결론이다. 물론 가짜 아닌 진짜 민주주의에 해당되는 말이다.

<김순진 교육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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