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북미대화 재개의 관건

2019-03-23 (토) 이승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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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말 2차 북미회담은 많은 전문가들의 예상과는 달리 결렬되었다. 표면상으로 미국이 영변 핵시설 파기 외에 실무 협상에는 없던 추가 조치를 요구했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그러나 북한 외무상 이용호는 추가조치에 대한 내용확인 없이 바로 결렬되었음을 발표했다.

1차 북미회담 이후 북미 사이에는 상당한 냉각기가 오갔다. 미국의 선 비핵화와 후 보상 일괄타결 방식과 북한의 상호 동시보상 방식의 괴리 때문이었다. 3달간의 냉각기를 마치고 북미가 협상을 재개할 수 있었던 것은 스티븐 비건이 실무회담 책임자로 나오면서 부터이다.

북미의 실무 회담 대표자인 비건과 김혁철 간의 합의는 사실상 영변핵시설 사찰과 파기,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보상조치인 것으로 드러났다. 외교 관례상 어느 정도의 합의안이 마련된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정상회담에서 회담 결렬은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다.
비건 대표를 통해 점진적인 비핵화 입장으로 선회하면서까지 합의안을 도출한 트럼프가 북미회담을 결렬시킨데 대해서 의문을 제기치 않을 수 없다.


미국 내 정치 상황이 그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회담 첫날, 트럼프의 개인 변호사인 코언 청문회가 민주당 주도로 연방의회에서 열렸다. 모든 언론은 청문회로 몰렸고 북미회담은 주목을 받지 못했다. 힘들게 열린 북미회담은 공동선언이 발표되더라도 빛을 보지 못할 실정이었다.

1차 회담과 2차 회담은 회담 성공과 결렬이라는 상반된 결과를 낳았지만 그 결과를 가져온 원인은 같다. 트럼프가 국내 정치에서 여론을 주도하느냐 하지 않느냐라는 점이다. 1차 회담은 북미의 초유의 역사적인 회담이었다. 국제사회뿐만 아니라, 미국 내 여론도 트럼프가 주도했음은 분명하다. 2차 회담에서도 트럼프는 영변 핵시설 파기를 통해서 국내여론을 주도해 나가려 했을 것이다. 모두 재선을 위한 포석이다.

민주당은 이러한 트럼프의 의중을 모를 리 없다. 회담 첫째 날 코언 청문회를 연 것은 회담결렬의 징조였다고 본다. 회담결렬 후 기자회담에서 트럼프는 자신이 대선에서 러시아와 내통하지 않았다는 코언의 말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켰다. 트럼프가 걱정하고 있는 점은 러시아와의 내통이 특별 검사에 의해 인정되느냐 되지 않느냐에 있다고 본다.
이것은 바로 탄핵 소추의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하노이에 와서도 얼마나 러시아 스캔들 문제에 집중했는지를 알 수 있다.

역설적으로 트럼프는 북미회담의 결렬로 다시 한 번 국내 여론의 주도권을 잡았다. 공화당과 민주당의 많은 의원들이 회담 결렬을 환영했다. 트럼프는 여론의 주도권을 잡는데 뛰어나다. 북미대화 재개는 미 국내정치에서 북미회담이 트럼프에게 주도권을 안겨주느냐 주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얼마 전 북한 쪽에서 동창리 미사일 발사대와 영변 핵시설 재가동이 확인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당분간 별다른 계기가 없는 한 긴장은 계속될 것이다. 북한체제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회담결렬은 북한의 자존심을 매우 상하게 했다고 본다. 주민을 결속시키고 북한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북한은 미국에게 가시적인 무력시위를 당분간 계속할 가능성이 크다.

국내정치를 이해하지 않고는 외교정책을 이해할 수 없다. 김정은과 트럼프는 쌍방의 국내정치를 깊이 이해하길 바란다. 최근 터져 나오는 북한의 불만 표시에도 불구하고 북미 평화모드라는 큰 흐름은 탔다고 본다.

두 번의 회담 성사 자체가 역사적인 일임에 분명하다. 트럼프에게는 북한 비핵화 말고는 재선을 위한 뚜렷한 카드가 없다. 김정은에게는 경제봉쇄 해제 없이는 북한경제를 살릴 방법이 없다. 경제발전은 김정은 수령체제 유지에 필수조건이다.

회담이 결렬된 상황에서 한국정부 말고는 북한과 미국을 중재할 당사자는 없어 보인다. 한국 정부가 미국과 북한의 국내정치 상황을 서로가 납득케 하고 북미가 다시 협상장에 나올 수 있도록 결정적인 가교 역할을 해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승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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