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다 큰 자녀 뒷바라지

2019-03-1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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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졸업한 딸의 입사면접에 동석한 아버지나 아들의 승진 ‘로비’에 나선 어머니를 상상하긴 힘들어도, 기숙사에 사는 대학생 자녀가 강의에 늦지 않도록 전화로 깨우거나 과제 마감일을 상기시켜주고 닥터 예약을 대신해 주는 부모는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지난주 터진 부유층의 대학입시 부정 스캔들은 불법행위이며 극단적인 예이지만 성인자녀의 성공을 돕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려는 요즘 부모들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이런 부모 성향의 실상과 배경을 뉴욕타임스가 “자녀들은 성장하는데 부모의 뒷바라지는 멈추지 않는다”란 분석기사에서 전하고 있다. 학자금 대출빚은 사상 가장 높고, 주택소유 비율은 가장 낮은 것이 요즘의 ‘영 어덜트’ 세대다. 대학도 직장도 경쟁은 점점 심해지는데 경제전망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젊은 세대가 성인으로 독립하기가 힘든 세상이기 때문이다.

불평등 격차가 갈수록 악화되는 사회에서, 명문대와 번듯한 전문직이 ‘신분의 상징’ 혹은 ‘신분상승의 확실한 사다리’가 되어주는 사회에서, 내 아이가 남보다 앞서 갈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조바심이 부모들을 끝없는 뒷바라지의 늪에 빠지게 한다.


일부 부유층만이 아니다. 여론조사기관 모닝 컨설트가 지난달 실시한 서베이에 의하면 소득에 관계없이 대다수 부모들이 성인 자녀의 일상에 개입해 뒷바라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8~28세 자녀 1,508명과 그 또래 자녀를 둔 1,136명 부모들을 대상으로 한 서베이 결과다.

대학교 과제 제출 등 자녀들이 지켜야할 마감일을 알려주는 부모가 76%. 닥터예약 대신해주는 부모가 74%에 달했으며, 강의나 시험에 지각하지 않도록 전화로 잠 깨우는 부모도 15%나 되었다. 대학생 자녀의 시험공부 돕기 22%, 입사나 인턴 지원서 대신 작성이나 돕기가 16%, 자녀성적 논의 위한 교수접촉이 8%였다. 많은 대학이 ‘부모관계 오피스’를 따로 두고 있다.

미시간 대학이 조사한 고용주가 직접 목격한 부모의 ‘과잉 뒷바라지’ 서베이의 결과는 더 놀랍다. 자녀 대신 이력서를 제출한 부모가 31%, 자녀의 승진과 봉급인상을 요구한 부모 6%, 입사면접에 동석한 부모가 4%였다. 이전 세대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라고 고용주들은 고개를 흔든다.

18세 이상 성인자녀는 독립해야 한다는 불문율은 미국에서도 깨진 지 오래다. 소비자지출 서베이에 의하면 요즘은 자녀에게 돈이 가장 많이 들어갈 때가 18세부터 20대까지다. 이 연령대 성인자녀의 부모 44%가 등록금이나 학자금 대출 상환을 돕고 있다. “언제부터 재정적으로 독립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응답 자녀들의 가장 많은 수가 “25~28세”라고 답했다.

어느 정도까지의 부모 지원이 자녀의 대학입학과 취업에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중요한 것은 적정선이다. 지나치면 스스로 살아가는 기술을 익히고 자신감과 성취감을 느끼면서 성장하는 기회를 자녀로부터 빼앗는 것이 되고 만다.

“내 아이는 내가 올바른 미래로 데려다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라고 스탠포드 대학의 줄리 리스콧-하임스 교수는 조언한다. 어느 부모에게나 말보다는 지키기가 훨씬 어렵지만, 아이 스스로 자신의 미래에 도착하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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