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잘생겼다! 서울’

2019-03-16 (토) 배광자 수필가
작게 크게
지난 크리스마스 전날 딱히 할 일도 없고 해서 심심하던 차에 마곡나루 어디쯤에 ‘서울 식물원’이 새로 생겼다는 지인의 말을 듣고 남편과 함께 찾아가 보았다. 가는 도중에 넓은 도로 큰 벽에 ‘잘생겼다! 서울’이라고 큼지막한 글씨로 쓰인 것을 보고 놀라움과 동시에 심쿵했다. 내가 이번 한국 방문에서 느낀 것을 그대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잘생겼다! 서울 20’은 2018년 서울시의 캠페인으로 서울 전역에서 즐길 수 있는 시설, 공원, 축제 등 ‘잘 생긴’ 서울의 새 명소 20곳을 소개하는 프로젝트로 2018년 새로 문을 열었거나 개장을 앞둔 곳이다. 거기에 금년 5월에 정식으로 오픈하는 ‘서울 식물원’이 선정된 모양이다.

30여 년 전 미국으로 떠난 후 몇 차례 한국 방문을 했다. 매번 올 때마다 한국이 발전을 거듭하더니 이젠 여러 면에서 가히 세계 제일이라는 수식어가 자연스럽게 들릴 정도다. 그 중에서도 내가 경험한 지하철과 화장실이 인상적이다.


서울에서 지하철을 타고 다니다보면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깨끗하고 안전하고 편리하다. 이리저리 연결이 잘 되어 있어 못 갈 곳이 없다. 또 지하철 곳곳에 깨끗한 화장실이 있고 재래식 변기에 좌변기, 유아와 보호자가 함께 들어가는 화장실이 따로 있다. 화장실 안에는 ‘두고 가는 물건은 없으십니까’ 라는 문구 등 지나치다시피 친절하다. 작년에 뉴욕을 방문했을 때 지하철 어디에도 화장실이 없어서 절절 맸던 것을 생각하면 한국은 화장실 천국이다.

예전에 구멍가게 같았던 동회 사무소는 주민 센터로 이름을 바꾸고 최신식 건물에 쾌적한 환경이다. 그 안에 도서관 등 문화센터가 있고 샤워시설을 갖춘 헬스장이 있으며 화장실에는 비데까지 갖추어 놓았다. 다른 건 몰라도 한국의 지하철과 공공시설의 화장실 문화는 한국이 최고라는 것을 인정한다.

지자체의 경쟁 때문인지 어디를 가나 아름답고 반듯하게 꾸며진 도시의 외관은 내가 떠날 무렵 다소 초라하게 느껴졌던 나의 조국 대한민국이 맞나 싶게 변했다. 서울은 물론이고 내가 가본 어느 곳 하나 빠짐없이 그야말로 잘생겼다. 한국이 잘 사는 나라라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그런데 TV를 보면 매일 많은 사람들이 머리에 띠를 두르고 주먹을 불끈 쥐고 팔을 올렸다 내렸다하며 성난 표정들이다.

어느 날 친구들과 만날 일이 있어서 광화문에 있는 찻집을 찾아가다가 깜짝 놀랐다. 광화문 네거리 동아일보 구 건물 (일미 미술관) 한편에 ‘엉 망’ 이라고 세로로 쓴 어마어마하게 큰 두 글자가 5층 건물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뒤덮었다. 무슨 전시회 주제인 것 같았다.

한국이 하드웨어는 번듯하나 소프트웨어가 엉망이라는 표현으로 생각되었다. 놀란 가슴을 안고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어보니 겉으로 보기엔 한국이 잘 사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그게 언제까지일지는 장담 못한다는 것이다. 다들 한숨을 쉬었다. 그 잘생긴 서울의 외모가 망가질 까봐 걱정이 되었다.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데 옆쪽 앞좌석에 앉은 젊은 여자가 누군가와 전화를 하고 있었다. 느슨하게 머리를 틀어 올린 그 여인의 옆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비너스의 옆얼굴이 저렇게 예쁠까? 모나리자의 통통한 손이 저리 아름다울까? 스마트 폰을 쥔 손모양이며 가느다란 목선이 완벽하게 고전적인 미인이었다.

빨리 그 여인의 얼굴을 정면에서 보고 싶은데 일부러 가서 쳐다보기도 민망하고, 그 여자가 먼저 내려 버릴까봐 안달을 하다가 마침내 내가 먼저 내리게 되었다. 그런데, 얼른 훔쳐 본 그녀의 얼굴은 내 상상을 짓밟아 버렸다. 눈, 코 등 얼굴을 다 뜯어 고친 티가 금방 났다. 자연미라곤 어디 한군데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잘생겼다! 서울20’이 성형미인처럼 겉만 번지르르한 장소가 아니라 진정으로 시민이 즐기고 누릴만한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시민들로부터 ‘잘생겼다! 서울’이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되기를 바란다.

<배광자 수필가>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