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참회의 계절

2019-03-13 (수) 최효섭 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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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의 계절

최효섭 아동문학가·목사

부활절 이전 40일간을 사순절(四旬節)이라고 하며 이때를 기독교에서는 ‘참회의 계절’이라고도 부른다. 회개와 반성으로 조용하게 자신을 돌아보는 계절이다. 예루살렘에는 ‘통곡의 벽’이 있다. 언제나 사람들이 이 벽을 마주 보며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면서 조금씩 자리를 이동한다. 옛 성전의 지성소(至聖所)가 있었던 쪽으로 이동하며 기도하는 것이다.

유대교 연구가인 존 키드의 조사에 의하면 지성소가 가까워질수록 순례자들의 눈에서 소리 없는 눈물이 흘러내린다.

옛날 유대인의 성전에는 지성소라 불리는 공간이 있고 거기에 하나님이 계신다고 믿었던 것이다. 지성소가 가까워지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은 하나님을 가까이 느낄 때 사람은 자기의 죄를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예수는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가 웃을 것임이요”(누가복음 6:21)라고 하셨다. 눈물 고인 눈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 그 눈물이 자신을 뉘우치는 눈물이라면 무척이나 고귀한 눈물이다. 모지고 성난 눈은 주변을 긴장시킨다. 친절한 눈동자는 주변을 안심시킨다.

아름다운 눈은 말없는 자를 웅변가로 만든다. 슬픈 눈은 온 집안을 우울하게 한다. 반짝이는 눈은 상대에게 용기를 준다. 졸린 눈은 입맛을 잃게 한다. 멍한 눈은 남을 실망시킨다. 눈의 표정은 수 백 가지로 변하는데 그 변화마다 주변에 던지는 영향이 다르다. 그 중에서도 눈물고인 눈, 용서를 구하는 눈은 하나님까지도 감동시킨다.

내 경험에 비춰 생각할 때 가장 하기 힘든 일 세 가지가 있는데 미운 사람에게 정을 주는 일과 싫어하는 사람을 받아들이는 일, 그리고 별 것 아닌 것 가지고 회개하는 일이다. 그 중 세 번째가 제일 어렵다. 드러난 것을 회개하는 것은 사실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회개라고 할 수도 없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것을 회개하는 것이 진짜 회개이다.

회개는 자발적인 성격을 가진다. 누가 추궁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숨기고 있으면 더 무사하고 체면도 서고 존경도 받을 수 있을 때 자진해서 ‘내가 잘못했다’고 말하는 것이 회개이다. 이런 회개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인격자이다. 회개란 벌거숭이가 되는 것이다. 가장 향기로운 제물이 참회하는 마음이다.

고백은 용서를 낳는다. 1,000 가지의 선행을 쌓아도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는 없다. 인간의 재물로 바벨탑을 쌓아올려도 하늘에 이를 수는 없다. 신의 진노를 잔잔하게 하는 유일한 제물이 곧 고백이요 회개이다.

LA에 사는 한 수전노의 생애를 AP 통신이 전하였다. 잭 콜슨이란 남자가 갑자기 죽었는데 그의 은행 잔고에 100만 달러나 있었다고 한다. 이웃이 말하는 그의 생활은 최저였다. 교회에 헌금해 본 일도 없고, 자선 단체에 기부금을 낸 흔적도 없었다. 노인의 죽음을 알고 오랜만에 딸이 찾아왔는데 이렇게 말하였다. “불쌍한 노인이었습니다. 돈이 아까워서 재혼도 안 하셨습니다. 자기의 돈에 눌려 사시다 돌아가신 거지요.”

기도와 참회는 하나님께 털어놓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은 심리적으로도 굉장한 효력을 발휘한다. 바닥까지 털어놓고 이야기 할 상대가 없는 사람은 우선 하나님께 자기의 숨긴 부분을 털어놓으면 좋다. 그것이 참회이다. 회개는 용서의 피치 못할 선행조건이다. 간절한 양심의 부르짖음 없이 용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

<최효섭 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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