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반려동물과 천국

2019-03-1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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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에게 애마가 한 마리 있었다. 그 말에게 화려한 집을 지어주고. 수놓은 옷을 입히고 사람도 먹기 힘든 비싼 음식을 먹여 키웠다. 말은 결국 비만으로 죽었다.

비통한 왕은 말의 장례를 아주 성대히 치르게 했다. 2품 이상의 품계인 대부의 격식으로 초상을 치르도록 명령했다. 그리고 그 조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자는 죽음의 벌을 받을 것이라고 엄포했다.

우맹이라는 광대가 그 말을 듣고 왕을 찾아가 하늘을 보고 통곡했다. 왕이 놀라 물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왕이 아끼던 말이니 대부가 아니라 왕의 예로 장사를 지내고 백성을 동원해 능을 만들어 군사가 지키고 대대로 제사를 지내게 해야 한다고.


그리고 한 마디 덧붙였다. 그래야만 모든 사람들이 왕이 사람을 경시하고 말을 중시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왕은 결국 애마의 초호화판 장례를 멈추게 했다.

왕은 춘추오패(春秋五覇)의 하나인 초장왕으로 사기열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1인가구가 증가하고 있다. 자식들이 품에서 벗어난 건 이미 오래전 일이다. 배우자도 떠났다. 그래서 혼자 산다. 아니, 아직 젊다면 젊다. 그런데 결혼도 안했다. 그래서 늘고 있는 것이 1인가구다. 결혼을 했다. 그러나 아이는 키우지 않는다. 그런 경우도 부지기수다.

어린아이 인구 감소, 그와 반비례해 늘고 있는 것은 반려동물이다. 다섯 집 건너 한집은 반려동물을 키운다. 이것이 한국의 새로운 가정생활 풍속도라고 한다. 동물을 인생의 ‘진지한 반려자’로 여기는 그런 생활 말이다.

그 신풍속도가 전해진 탓인가. 미주한인사회에서도 가끔 못 보던 풍경이 목격된다.

가정용품 전문점에 한 여인이 유모차를 몰고 들어왔다. 그 유모차가 그렇다. 꽤나 고급 브랜드다. 지나던 한 여성 쇼핑객이 유모차를 들여다보며 감탄(?)을 한다. ‘너무 귀여워요’하고.

유모차를 몰고 있는 여인은 그러자 자랑스럽게 ‘베이비’를 소개한다. 내 딸이라는 것. 그 딸이라는 베이비는 그런데 강아지였다.


이는 공원에서도 종종 목격되는 풍경이다. 강아지에게 겹겹이 옷을 입혔다. 해도 가려준다. 그런 강아지를 사람들이 들여다보면 자랑스럽게 ‘우리 아기’라고 말하는 젊은 여성들의 모습.

뭐 하기는 미국에서는 신풍경이라고 할 수도 없다. 미국가정의 68%가 개나, 고양이 등 반려동물을 키운다. 그러면서 기르는 동물을 가족처럼 끔찍이 돌보는 것이 미국인들이니까.

그렇지만 지나침은 모자람보다 못하다 했나. 신풍속도로 자리잡아가는 한국인들의 반려동물 사랑이 어딘가 그런 느낌이다.

함께 살던 반려동물이 죽자 천국에 가게 해달라며 추모예배를 부탁하는 일이 부쩍 많아져 교회 목사들이 힘들어 한다고 한다. 그래서 ‘목사는 반려동물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는다’는 교회규정을 신설하는 교회도 늘고 있다는 보도다.

그 심정은 이해가 된다. 그러나 세상이 어떻게 되든 오직 내 감정만이 중요하다는 분위기, 이는 일종의 세기말적 현상으로 보여 씁쓰레한 느낌이다. 이러다가는 반려동물과 결혼을 하겠다고 주례를 부탁하는 세상이 오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도 겹쳐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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