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죽음을 알게 된 건 한 달 전쯤이다. 잘 있으려니 생각하며 먼저 연락해보지 않은 건 내 잘못이었다. 나는 늘 걸려온 전화를 받고 그녀의 이야기들 들어주며 적지 않은 세월을 보냈다.
문득 그녀가 소식을 전해오지 않은 게 1년이 훨씬 넘었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는 페이스북 친구이기도 해서 그녀가 내 근황을 알겠거니 했다. 이제는 나와 소통이 없이도 잘 지내나보다고 생각하니 조금 섭섭하기도 했다.
궁금함과 섭섭함이 뒤섞인 어느 날 그녀의 페이스북을 방문했다. 거기 1년도 넘게 전 딸이 올려놓은 사진 속 그녀의 모습이 눈에 익었다. 우리가 만난 그 가을날에 입었던 노란 니트 코트 차림이었다. 그 때 그녀가 한국에서 베풀어줬던 내 문학상 수상 축하 오찬이 떠올랐다. 아픈 몸을 이끌고 오랜만에 고국을 방문했던 그녀는 자신의 숙소로 나와 몇 명을 초청해 조촐한 파티를 열었다. 가을비를 맞으며 케이크를 사오고, 주방 아줌마에게 부탁해 맛있는 음식들을 마련했다. 그때 그녀가 입었던 그 노란 니트였다.
사진 밑의 영문 댓글들을 읽어나가던 나는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하늘에서 잘 쉬고 있을 거라는, 모두 그녀를 그리워할 거라는 내용이었다. 혹시나 싶어 구글에 검색을 하니 그녀가 사는 도시 지역 신문에 사진과 함께 당장에 부고가 떴다. 그녀가 떠난 건 2017년 늦가을 무렵이었다. 아이오와주 작은 도시의 지역신문은 그녀의 삶에 대해 자세히 기사를 실었다. 하지만 그 영문기사엔 그녀가 얼마나 문학을 사랑했는지는 쓰여 있지 않았다.
우리 알게 된 건 꼭 10년 전 문학을 통해서였다. 철학과 문학에 박식한 그녀에게 나는 맘이 끌렸고, 그녀는 나의 팬을 자청하며 열심히 격려를 해주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대학에 갓 입학한 아들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왔다. 그 아픔을 내가 어떻게 짐작이나 했겠는가. 그녀의 가슴에 맺힌 슬픔과 아픔의 응어리는 전화로도 짐작이 됐고, 나는 적절히 위로할 말을 찾지 못한 채 두 시간, 어느 땐 세 시간씩 그녀의 얘기를 듣기만 했다.
그 얼마 후 그녀는 자신이 백혈병에 걸렸다고 했다. 아들을 잃은 충격이 그 몸에 병을 만든 것 같아 맘이 아팠다. 하지만 그녀는 잘 버텨왔고, 우리는 알게 된지 6년이 넘어 한국에서 그렇게 만났다. 실제로 본 그녀는 단아하고 아름다웠다. 80년대 어두운 국내 정치현실에서 대학생 신분으로 해외도피를 했던 그녀의 삶은 독일로 미국으로 이어져왔고, 문학이란 공통분모에 나와 그렇게 인연이 닿았다.
그녀와 통화가 시작되면 보통 세 시간이었다. 나는 가끔 그녀가 전화를 걸어오면 받을 엄두를 못 내고 따로 시간을 내 전화를 걸기도 했다. 이제야 나는 그녀가 외로웠다는 걸 안다. 그 외로움을 더 받아줬어야 했는데…. 기록을 뒤져보니 마지막 통화는 그녀가 떠나기 한 달 반전쯤이었다. 그때 그녀는 말했다. 자신에게 맞는 골수를 찾지 못하기도 했지만 아직은 이식까지 해야 할 단계는 아니라고. 그래서 나는 좀 안심했다.
그리고 바로 그 뒤 나에게 큰 슬픔이 찾아왔다. 그때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이런 일을 당했구나. 위로 좀 해주겠니?, 했더라면 목소리라도 한 번 더 들어볼 수 있었을 텐데…. 내 가까이의 죽음을 전하는 건 그녀의 아픈 몸에 좋지 않을 것 같아 말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그녀가 먼저 내 슬픔을 눈치 채고 위로해주기를 기다리던 나의 유아적 태도 때문이었을 거다. 내가 슬픔에 멍해 있을 때 그녀는 병상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그녀는 그 한 달여 뒤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에 떠난 나의 슬픔과 그녀는 천국에서 만났을까? 세상에선 서로 만난 적이 없지만 나를 사랑했다는 것에서 그들은 서로를 알아볼 것만 같다. 또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다른 친구도 떠올려본다. 진심으로 내 문학을 격려하고 나를 의지했던 그 친구도 거기 함께 있을까? 이 질투 많은 세상에서 그들은 진정으로 상대가 잘 되기를 비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영혼이 그렇게 천국을 닮아 먼저 불러 가셨는지.
지난한 작업으로 장편소설 한편을 완성해놓고 가만히 불러보는 그 이름들, 보고 싶고 미안하다. 더 사랑해주지 못해서…. 지상의 봄이 푸르게 피어나는 날, 떠나간 그들은 이보다 훨씬 아름다운 영원의 봄 속에 살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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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숙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