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침묵의 살인자’

2019-03-0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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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가장 흔한 암은 폐암이다. 전체 암 중 폐암이 차지하는 비율은 13%로 1위고 2위 유방암 11%, 3위 대장암 10% 순이다. 폐암은 한때 ‘걸리면 죽는 병’으로 여겨질 만큼 치사율이 높았으나 이제는 의학기술의 발달로 한국에서는 5년 생존율이 67%에 이른다. 90년대 초만 해도 이 수치는 10%대에 불과했다.

그러나 나날이 발전하는 의술에도 불구하고 진단이 사실상 사망인 암이 있다. 췌장암이 그것이다. 췌장암이 전체 암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4%로 걸릴 확률은 낮은 편이다. 그러나 5년 생존율이 10%에 불과하고 걸린 사람의 92%가 죽는다.

사망률이 이토록 높은 것은 초기에는 증상이 거의 없어 조기진단이 어렵기 때문이다. 거기다 전이속도는 매우 빠르다. 몸에 이상을 느껴 병원을 찾으면 이미 다른 곳으로 전이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췌장은 위 등 각종 장기에 둘러싸여 있어 검진을 해도 이상 징후를 발견하기 어렵다. 이 암이 ‘침묵의 살인자’로 불리는 이유다.


췌장암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 가운데는 루치아노 파바로티, 스티브 잡스 등 유명 인사가 많은데 그 이유는 정기검진을 하며 건강에 신경을 쓴 이들조차 췌장암 발병 사실을 초기에 알아내지 못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작년 7월에는 LA를 대표하는 음식 평론가 조나단 골드가 췌장암 진단을 받고 불과 2주 만에 세상을 떴다.

전문가들은 췌장암의 증상으로 당뇨, 복부 통증, 체중 감소, 황달 등의 증상을 들고 과체중이거나 과음을 하고 담배를 피거나 가족력이 있는 사람들은 1년에 한번 정도 주기적으로 검사를 받을 것을 권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CT 스캔이 유력한 검진방법인데 비용도 비용이고 100% 초기 발견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어서 실천에 옮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얼마 전 한국에서 췌장암을 초기에 간단하면서도 정확히 진단해 낼 수 있는 기법이 개발돼 주목을 끈 바 있다. 연세대 백융기 연세 프로테움 연구원장팀은 췌장암 초기 환자 혈액에서 면역반응을 보조해주는 보체인자 B라는 물질이 증가한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혈액검사를 통해 췌장암 환자를 찾아내는 기법을 개발한 것이다. 307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실험에서 90% 이상 췌장암 환자를 찾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연구팀은 이 기법에 대한 특허를 신청하고 상용화 작업을 서두르고 있는데 빠르면 2020년에는 실용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6일 35년째 ‘제퍼디’ 게임을 진행해 온 알렉스 트리벡이 췌장암 4기라고 스스로 밝혔다. 이미 7,000회가 넘게 진행된 ‘제퍼디’는 미국의 대표적 게임쇼의 하나며 에미상만 33번을 받았다. 그 진행자인 트리벡은 2014년 기네스북에 ‘게임쇼 최다 진행자’로 선정됐다. 그 당시 이미 출연 회수가 6,829회를 기록했다.

트리벡은 발병 사실을 공개하면서 아직 게임 쇼 계약이 3년 남았다며 그때까지 살아남기 위해 싸울 것이라고 밝혔으나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하루 빨리 손쉬운 조기 진단법이 상용화돼 제2의 트리벡이 나오지 않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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