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자비로운 티투스

2019-03-0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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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의 10대 황제 티투스는 2년이라는 짧은 재위기간 동안 로마 시민들에게 가장 선정을 베푼 자비로운 황제로 역사에 남아있다. 그가 황제로 취임한 서기 79년부터 대형재해가 줄줄이 터졌는데 가장 큰 것이 베수비오 화산 대폭발이었다. 재위 두달 만에 일어난 이 참사로 폼페이와 인근 도시들이 초토화됐을 때 티투스는 피해지역에 지원을 보내고 신속하게 대처하여 위기를 수습했다.

이듬해에는 로마에서 대화재가 발생했다. 티투스는 사흘간 계속된 화재로 잿더미가 된 로마에서 대대적인 복구사업을 벌였으며, 그런 한편 페스트가 창궐하자 질병퇴치 및 구제 사업에도 진력해야 했다. 직접 재해현장을 다니며 지원을 아끼지 않고 진두지휘했던 티투스를 로마 시민들은 ‘인류의 총아’라며 존경했다.

그는 또 아버지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시작한, 우리에게는 콜로세움으로 더 잘 알려진 플라비우스 원형경기장을 완공했다. 그리고 준공기념으로 100일이 넘도록 축하행사를 벌여 로마 시민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티투스는 심지어 로마를 위해 사랑까지 포기했던 황제다. 그는 전쟁 과정에서 만난 이스라엘 공주 베레니케를 열렬히 사랑해 그녀와 결혼하려고 몇번 시도했으나 클레오파트라를 떠올린 로마인들이 싫어하자 그녀를 포기함으로써 시민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았다.

한편 그 유명한 예루살렘 함락을 이끈 사람도 티투스다. 황제가 되기 전인 서기 70년 로마군 최고 사령관이었던 티투스는 결사항쟁하던 이스라엘 열심당을 진압하고, 예루살렘 성전을 통곡의 벽만 남기고 완전히 파괴했다. 이 때문에 유대인들은 티투스를 원수로 여기고 있지만 이스라엘 역사가 요세푸스는 티투스가 예루살렘의 공격을 몹시 주저했고, 마구 학살하지도 않았으며 항복한 이스라엘인들에 대해서는 관용을 베풀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로마에 가면 누구나 돌아보는 관광 코스에 티투스 개선문이 있다.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돌아온 티투스의 성대한 개선식 장면이 이 기념물에 새겨져 지금까지 남아있다. 파리의 개선문을 비롯해 유럽 각국에 세워진 여러 개선문의 모델이 바로 이 티투스 개선문이다.

아무 것도 좋은 일을 하지 못한 날에는 “하루를 잃어버렸다”고 한탄했다는 티투스는 41세에 열병으로 죽었다. 남동생 도미티아누스에 의한 독살 가능성을 언급한 기록도 있다.

LA 오페라가 3월24일까지 공연하고 있는 모차르트의 ‘티투스의 자비’는 이 황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랑과 복수, 배신과 용서에 관한 드라마다. 모차르트가 그의 생애 마지막 해에 ‘요술피리’와 ‘레퀴엠’을 쓰던 도중 갑자기 위촉받아 18일 만에 작곡했다는 이 오페라는 당시엔 큰 인기를 끌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요술 피리’ 등에 밀려 거의 잊혀졌다가 21세기 들어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키고 남의 탓만 하며 2018년 한해동안 5,611번 거짓말을 했다는 대통령에게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은 넉넉하고 자비로운 티투스의 노래 속에 잠시나마 시름을 잊어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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