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패션과 정치

2019-03-0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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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드골은 단 한 가지 색의 수트만 입은 것으로 유명하다. 짙은 감색의 비즈니스 수트가 드골의 단골 복장이었다. 사실 드골뿐이 아니다. 서구의 정치지도자의 패션은 짙은 감색 내지 짙은 회색의 비즈니스 수트가 일반적이다.

‘패션이야말로 가장 사적이고 원시적인 커뮤니케이션의 시작이다’- 워싱턴포스트지의 패션 에디터 로빈 기브한이 한 말이다. 어떤 옷차림을 하고 나타나는가, 이는 많은 것을 말해준다.

‘짙은 색의 비즈니스 수트에 넥타이 차림’- 정치는 물론 비즈니스 월드 등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 남성의 옷차림이다.


같은 정장 차림을 했다는 건 지향성이 비슷하고 대화의 상대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인지 국제회의 광경을 보면 ‘짙은 색의 비즈니스 수트’는 암묵적인 드레스 코드로 굳어져 있다.

과거 중화인민공화국 지도자들은 그 드레스 코드를 따르지 않았다. 인민복 차림이 그들의 드레스 코드였다. 부르주아나 서양의 미와 패션의 개념을 거부한다. 그리고 평등을 지향한다. 이것이 인민복 드레스 코드가 은연중 던지고 있던 공산혁명 메시지였던 것

그 중국 지도자들도 인민복을 벗어 던졌다. 국제적 모임은 물론이고 전당대회 등 국내 정치모임에서도 비즈니스 수트가 드레스 코드로 자리 잡았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다시피 인민복을 고집하고 있다. 북한의 김정은이다. ‘력사적’이라는 남북정상회담은 물론이고 ‘더 더욱 력사적인’ 트럼프 대통령과의 미-북 정상회담에서도 김정은은 인민복 차림이었다.

그 옷차림이 그렇다. 상당히 고집스러워 보인다. 한사코 변화를 거부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가. 비즈니스 수트 정장의 트럼프와 인민복 차림의 김정은의 회담은 결국 결렬되고 말았다.

그 하노이 정상회담이 ‘노 딜’로 끝난 다음날 문재인 대통령은 두루마기 차림으로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두루마기 패션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고당(古堂) 조만식 선생이다. 항상 검은 색 무명 두루마기 차림이다. 김구 선생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두루마기는 한민족의 상징이 되다시피 했던 것.


그러나 세월과 함께 두루마기 차림의 정치지도자의 모습은 사라졌다. 그러다가 두루마기 패션이 다시 등장한 것은 미군장갑차 여중생 사망사건으로 반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된 2002년께다.

시위주동자들은 두루마기 차림으로 선두에 섰다. 또 국제적 여론을 환기시키려고 미국에 원정 온 사람들의 옷차림도 두루마기였다. 두루마기는 순수한 민족주의에서 반미, 혹은 반외세성의 저항적인 배타적 민족주의의 상징으로 변모된 것.

문 대통령은 물론 ‘3.1절 100주년의 날’을 맞아 두루마기 차림을 한 것으로 안다. 그런데 그 발언이 그렇다. 일제잔재 청산을 외치면서 ‘빨갱이’라는 용어가 친일잔재라고 주장한 것.

‘빨갱이’란 용어 해석마저 변형시키면서 새삼 친일파 공격에 나선 두루마기 차림의 대통령. 그 모습이 뭔가의 전조처럼 느껴진다면 지나친 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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