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하노이’를 넘어서

2019-03-01 (금) 권정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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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선언’은 없었다. 지난해 6월 싱가포르 정상회담으로부터 260일. 70여년 적대와 불신의 벽을 넘어 우여곡절 끝에 성사된 2차 미북 정상회담은 성과 없이 끝났다.

길은 애초부터 멀었다. 미국에서 21시간을 날아서, 북한에서는 장장 66시간 육로를 달려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성조기와 인공기 펄럭이는 하노이에서 손을 맞잡았다. ‘하노이, 평화를 위한 도시’ 표어와 함께 베트남이 깔아준 레드카펫 위에서 트럼프는 ‘큰 성공’을 호언장담했고, 김정은은 “모두가 반기는 좋은 결과”를 낙관했지만, 호감을 과시하며 화기애애하게 밥도 같이 먹었지만 타협은 이뤄지지 못했다.

전문가들이 내놓았던 ‘스몰 딜’ ‘빅 딜’의 예상은 모두 깨어지고 회담은 ‘노 딜’로 끝을 맺었다.


극과 극, 이해의 골이 문제였다. 궁극적으로 미국이 원하는 완전한 비핵화와 북한이 원하는 완전한 제재해제 사이에는 철천지원수로 지낸 70여년 세월만큼의 깊은 골이 놓여 있다. 한마디로 불신이다. 핵 폐기도, 제제 해제도, 요구대로 들어줬다가 나중에 상대가 태도를 바꾸면 어쩔 것인가 - 믿을 수가 없으니 발을 내디딜 수가 없다.

이번 회담에서 기본적 합의사항으로 기대되었던 영변 핵시설 폐쇄, 제재 완화, 연락사무소 개설, 종선선언 … 어느 것 하나 실현되지 못했다. 협상은 실패했다. 빈손으로 돌아가는 두 정상의 귀국길은 하노이로 향하던 때보다 훨씬 긴 21시간, 66시간이 될 것이다.

수십 년 적대관계가 하루아침에 우호적으로 돌아설 수는 없다. 분명한 목표의식과 끈질긴 인내로 한 뼘 한 뼘 좁혀가야 도달할 수 있을 지루하고 지난한 타협의 길이 앞에 놓여있다.

미국 외교사에는 비슷한 ‘실패의 추억’이 33년 전에도 있었다. 역사적 돌파구를 기대하며 시도한 적대국 정상과의 회담이 참담한 실패로 끝났었다. 당시 주인공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기장. 이슈는 핵군축이었다.

1945년 이후 냉전시대로 접어들면서 미?소 양국은 끝 모를 군비경쟁을 이어갔다. 그렇게 근 40년 지나자 지구상에는 전 인류를 멸망시키고도 남을 핵무기가 쌓였다. 언제 어떤 사소한 실수로 3차 대전이 일어날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위험이 상존했다. 3차 대전은 인류의 멸망을 의미했다.

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몰아치던 냉전의 전사 레이건이 생각을 바꾸기 시작한 것은 1983년 말이었다고 한다. 그해 9월1일 대한항공 여객기 격추사건이 있었다. 뉴욕 발 서울 행 비행기가 실수로 소련영공에 들어갔다가 미국 스파이기로 오인당하며 그대로 격추되었다. 기내에 있던 269명 전원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비슷한 오해와 실수로 핵미사일이 발사되지 말라는 법이 없는 것이었다. 미국사회에는 핵전쟁의 공포가 확산되었다.

그 무렵 소련은 새로운 지도자를 맞았다. 이전 서기장들과는 세대가 다른 50대의 젊은 고르바초프가 개혁개방을 내세우며 피폐해진 경제 살리기에 나섰다. 경제를 살리려면 군비를 줄여야 했다. GNP의 20%, 국가예산의 40%를 군비로 쏟아 부으면서 경제성장은 불가능했다. 군비를 줄이는 유일한 길은 미국과의 군축합의였다.


이해가 맞아 떨어진 양국 정상이 마침내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은 것은 1986년 10월, 아이슬랜드의 수도 레이캬비크에서였다. 그 1년 전 제네바에서 잠시 회동한 두 정상이 1박2일의 본격적 협상에 돌입했다.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은 ‘무찌르자 공산당!’을 교육받던 남한과 북한 이상으로 원수지간이었다. 양국 정상의 만남에 국내외적 비판이 쏟아졌다. 그런 어려움을 무릅쓰고 강행한 정상회담은 그러나 실패로 끝났다. 고르바초프가 미국의 전략방위구상(SDI), 즉 ‘스타워즈’ 폐기를 요청하자 레이건이 거부하면서 회담은 결렬되었다. 합의사항 하나 못 건진 완벽한 실패였다.

역사가 재미있는 것은 일단 트인 물꼬는 갈 길을 간다는 것이다. ‘실패’로 결론지어졌던 미소 정상회담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1987년 워싱턴 회담, 88년 모스크바 회담으로 이어지면서 결국 냉전종식의 길을 열었다. 레이캬비크 회담에서 두 정상이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면서 개인적으로 친구가 된 것이 큰 역할을 했다. 그런 맥락에서 레이캬비크 회담은 ‘실패했지만 성공한 회담’으로 불린다.

이번 하노이 회담 역시 훗날 ‘실패했지만 성공한 회담’으로 평가받기를 바란다. 고르바초프가 군비경쟁 대신 경제 살리기를 택했듯 김정은도 핵 대신 경제를 분명하게 선택하기를 바란다. 트럼프와 김정은 사이의 호감은 다행이다. 두 사람의 개인적 감정이 우정과 신뢰로 이어지기를, 그래서 하노이의 실패를 넘어서기를 바란다.

역사에 기적은 있고 기적을 이루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권정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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