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톨릭교회가 신뢰를 회복하는 길

2019-02-22 (금) 권정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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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어린아이들에게 어떤 고통이었을까. 하늘같은 존재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 - 육체적 아픔, 정신적 혼란, 신음소리도 낼 수 없는 완벽한 무력감을 상상해본다. 그리고 한 피해자의 입에서 나온 “토할 것 같았다”는 표현을 보탠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하던 의아함은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하는 의심을 낳더니 이제는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기정사실이 되었다. 가톨릭 사제들의 어린이 성추행, 성학대 스캔들이 몇 가닥 연기 수준을 넘어 전 세계 6대륙에서 시커먼 매연을 뿜어내고 있다.

사건은 주로 1960년대부터 1980년대에 발생하고, 수십 년 은폐되다가 피해자들이 어른이 되면서 폭로되기 시작한 지 20~30년이다. 교회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필시 13억 신자들의 믿음에 금이 갈까 염려해서, 사제들의 성추행 스캔들을 덮는데 급급했던 바티칸이 결국 두 손을 들었다. 정면으로 대처하기로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1일 로마 가톨릭 2000여년 역사상 그 어떤 교황도 소집하지 않았던 특별 회의를 소집했다. 전 세계 주교 100여명 등 고위 성직자들을 불러 사제들의 아동 성학대 문제해결책을 함께 논의하는 회의이다. 해당 교구 주교의 법적 책임, 교회가 떠맡아야할 책무, 투명성 있는 대처 등을 집중 검토함으로써 성적 학대로부터 어린이들을 보호하겠다는 의지이다.

교회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가해자인 사제를 보호하던 데서 피해자 지키기로 발상과 원칙의 대전환을 의미한다.

미국에서 가톨릭교회 내 성추행 성학대 문제를 처음으로 비중 있게 다룬 사람은 저자인 제이슨 베리(70)이다. 1984년 가을 내셔널 가톨릭 리포터(NCR) 기자로 일하던 당시 그는 루이지애나 시골에서 한 신부가 사내아이들 수십명을 성학대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조만간 아빠가 될 예정이던 그는 피해 아동들을 생각하니 소름이 끼쳤다. 한편 가톨릭 신자로서 “사제도 사람이니 죄를 지을 수 있겠지” 하고 받아들였다. 그리고 기자로서 그는 소문의 진상을 파헤치고 싶었다.

이후 수년간 미 전국 사제들의 어린이 성학대 문제를 심층 취재한 결과가 1992년 펴낸 책 ‘우리를 시험에 들게 마옵시고‘이다. 책은 사제들의 성추행 실태와 아울러 가톨릭교회 내부의 비밀주의를 폭로했다. 문제 신부들을 문제 삼지 않고 계속 다른 교구로 전보시키니 피해 아동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도이다.

이어 2002년 보스턴 글로브가 수십 년에 걸친 보스턴 교구 사제의 성학대 그리고 은폐로 일관한 교회의 민낯을 시리즈로 보도하면서 이슈는 더 이상 장막 뒤로 숨을 수 없게 되었다. 미디어들의 보도가 이어졌다. 그럼에도 성추행 신부들이 처벌을 받게 된 것은 불과 몇 년 전부터이다.

최근에는 자고새면 스캔들이 터져 나온다. 봇물이 터진 것 같다. 지난 8월 펜실베니아 교구 성직자 300여명이 70년에 걸쳐 아동 1,000여명을 성학대 했다는 대배심 보고서도 충격적이었고, 미국의 대표적 종교 지도자로 2009년 에드워드 케네디 전 상원의원 장례식을 집례했던 시어도어 맥캐릭(88) 전 워싱턴 대주교의 수십년 성추행 전력 역시 충격적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주 맥캐릭의 성직을 박탈했다.


그 외 사제들의 수녀 성폭행, 자녀를 얻은 사제들에 대한 교황청 내부지침 등이 연이어 폭로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끔찍한 것은 말 못하는 농아들에 대한 폭력이었다.

워싱턴 포스트는 19일 이탈리아와 아르헨티나 소재 농아기숙학교 스캔들을 심층보도 했다. 문제 있는 사제들이 교회의 묵인 하에 여러 농아학교들에 전보되면서 양 대륙에서 수십년 추행이 이어졌다. 아동들은 대부분 가난하면서 교회의 신성함을 철썩 같이 믿는 가정 출신들로 외부와 의사소통을 못하니 ‘완벽한 희생물’이었다. 한 여성은 13살 때 끔찍한 일을 당하고 학교에서 도망쳐 나와 부모에게 말했지만 허사였다. 부모는 딸의 말을 믿지 않고 학교로 되돌려 보냈다.

이들이 성인이 되어 2008년부터 교구 주교에게 탄원하고, 2011년에는 성폭력 사제들의 명단을 만들어 교황청에 전달하고, 2015년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 직접 명단을 전달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약자들의 편으로 통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이 문제에는 선뜻 행동하지 못하다가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 2016년 마침내 농아학교 사건을 파헤친 것은 지역 검찰이었다.

문제는 덮는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 덮고 가기에 문제가 너무 많다는 사실을 교황청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가톨릭 사제들 중 성추행에 연루된 사제는 4~5% 라고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들 썩은 부분을 도려내고 과감한 개혁을 해내기를 기대한다. 교회의 권위는 고통받는 약자들이 교회에 갖는 신뢰로 이룩된다.

<권정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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