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코미디언 전성시대

2019-02-20 (수)
작게 크게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생소한 이름이다. 우크라이나인들에게는 친숙한 존재다. 코미디언으로 인기 TV드라마에서 대통령을 연기했다. 그런 그가 우크라이나 정계를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대선에 뛰어든 그는 현직 대통령보다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 것.

지미 모랄레스가 과테말라의 제 37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해는 2015년이다. 그 역시 코미디언출신이다. 20년 동안 사람들을 웃겨왔다. 그런 그는 결코 국민들을 울게 하지 않겠다는 공약과 함께 70%의 압도적 득표율로 대통령이 됐다.

코미디언이 대통령이 되다니. 세계는 넓고 별 일이 다 있으니 어쩌다가 그리 됐겠지. 뭐 그리 가벼이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삼인성호(三人成虎)라고 했나. 어쩌다가 한 두 케이스가 아니다. 코미디언이 정치인으로 성공한 케이스가. 그래서 나오는 말은 이러다가 코미디언이 온 세계를 통치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마란 샤레츠 역시 코미디언이다. 성대모사가 전공으로 정치 쇼로 일찍이 이름을 날렸다. 그런 그가 이끄는 슬로베니아의 좌파정당은 지난해 총선에 승리, 총리에 취임했다.

그 이름이 유럽 전체에 알려졌다. 먼저 코미디언으로. 그러다가 정치적 거물이 돼 더 명성을 날리고 있다. 그 한 이름은 존 크나르다. 또 다른 이름은 베데 그릴로. 크나르는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 시장이다. 그릴로는 이탈리아 제1야당 오성운동의 지도자다.

‘코미디언 정치인 전성시대’-이게 어떻게 가능하게 된 것인가. 포퓰리즘이 판친다. 그 세태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일부의 분석이다.

조크인줄 알았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출마한 것 자체가. 그런데 결국 백악관에 입성했다. 미국에서 일어난 이 해프닝 역시 ‘코미디언 정치인 전성시대’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

정부를 믿지 않는다. 언론도 믿을 것이 못 된다. 미국에서, 또 한국에서, 그리고 지구촌 곳곳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기득권층, 엘리트, 또 뭐가 있나. 하여튼 이런 것들은 무조건 배척하고 본다. 한국의 시사용어로는 ‘적폐대상’이다. 이게 하나의 세계적 흐름이다. 그 흐름은 차라리 개그를 던지는 코미디언에게 아주 유리한 정치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것.

다른 말로 하면 정치가 코미디가 되다보니 코미디언이 정치인이 되는 것이란 해석도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멀리서 바라보이는 한국정치, 그 모습 역시 영락없는 코미디다. ‘내로남불’이라 했나. 청와대를 비롯해 여권의 힘깨나 쓴다는 사람들의 그 내로남불 연기는 이제 경지에 오른 느낌이다.


블랙리스트니 어쩌니 불리한 이야기가 나오면 아예 모르는 척한다. 그러다가 엉뚱한 주장과 함께 반격에 나선다. 그 모르쇠 표정연기나 반격 ‘액팅’은 가히 ‘막장소극’ 달인의 수준이다.

정부가 나서서 방송에 출연하는 ‘걸 그룹 외모지침’을 내린 것도 그렇다. 그 모양새가 빛바랜 채플린의 40년대식 흑백 히틀러 풍자극을 자초하고 있는 느낌이다.

차기 대권주자로 가장 유력시 되는 한국의 코미디언은 누구일까.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