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큰손들의‘후보 샤핑’

2019-02-1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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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이맘때, 막강한 선두주자 힐러리 클리턴이 버티고 있던 민주당과 달리 20여명의 잠룡들이 서성대며 초만원 사태가 예상되었던 공화당 경선은 막 전열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초기 경선 지역에서 열리는 보수단체들의 행사에는 10여명의 예비주자들이 북적거렸고, 지명도 높은 젭 부시나 미트 롬니가 어디어디서 어느 백만장자와 만났다는 보도도 심심찮게 전해졌다.

그중 많은 주자들의 신경을 곤두서게 했던 것이 ‘초대 받은’ 4명의 주자만 참석했던 보수 부자들의 팜스프링스 연례 세미나였다. 후보 샤핑에 나선 부유한 큰손 기부자들이 능력과 인물과 정책을 이리저리 알아보고 재본 후 일단 4명을 선택한 것이었다.

2020년 대선 민주당 주자들의 출마선언이 이어지고 있는 요즘은 민주당 큰손들의 후보 샤핑 기간이다. 4년 전 공화당보다 더 많은 잠룡들의 이름이 거론되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기부가들도 분주해졌다. 한 특정후보를 집중 후원하던 예년과 달리 양다리, 세 다리 걸치는 ‘어장관리’가 한창이다.


기부가들이 유력 후보들과 관계를 남보다 먼저 다지기 위해 일찍부터 지지 표명을 했던 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내 후보’를 정하는 페이스가 4년 전 공화당 때보다 더 느린 듯하다.

이번 민주 경선은 한차례 걸러내고 전열이 재정비된다 해도 막강한 선두주자 없이 한동안 많은 후보들이 난립할 것으로 예상되어서인지 기부가들은 별 서두는 기색 없이 시간을 끌고 있다고 온라인 정치매체 ‘더 힐’은 지적한다.

2008년과 2016년 대선 때 일찌감치 힐러리 클린턴에 올인 했던 한 민주당 기부가는 금년엔 여러 후보들을 여러 번 만나 자세히 알기 원한다고 강조한다. 아직은 결정할 준비가 안 되었다는 것이다. “몇몇 후보들과 상당히 가깝지만 지금은 누가 트럼프를 이길 수 있는 최선의 후보인가를 샤핑 중이다. 결국 마지막에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점이니까”라고 그는 말한다.

체크를 쓰는 ‘펀드레이저’보다 아직은 기부가들에게 후보를 소개해 최선의 후보를 선택할 기회를 주는 ‘프렌드레이저’ 모임이 자주 열리고 있다.

힐러리를 처음부터 후원했던 민주당의 유명 기부가 존 베인은 ‘강한 호감’을 느끼는 후보가 있긴 하지만 그의 정책과 사람됨, 좋은 대통령감인가, 트럼프를 이길 수 있나를 이모저모로 살펴보며 확실한 후원 약속은 아직 미루고 있다.

과거 대선이 교훈을 주기 때문이다. “이 단계에선 유권자들도, 기부가들도 지미 카터나 빌 클린턴, 버락 오바마가 누구인지 조차 몰랐었다”고 그는 털어 놓았다.

예외도 없지는 않다. 화려한 출정식을 갖고 지명도를 높인 후 본격 모금에 착수한 카말라 해리스는 한 큰손 기부가로부터 “대통령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는 평가와 함께 사실상의 후원 약속을 받아냈고, 한 큰 손 그룹은 “게임체인저가 될 조 바이든”을, 다른 큰 손 그룹은 “젊은 뉴페이스” 베토 오루크의 출마선언을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4년 전 공화당 큰 손들이 심사숙고해 샤핑했던 4명의 ‘유망’ 후보 중 도널드 트럼프는 물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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