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2.8 독립선언과 미 독립선언서 비교

2019-02-14 (목) 최연홍 시인·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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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년 조선 독립운동은 일본 동경에서 일어난 조선 학생들의 2월8일 독립선언서 채택과 결의문으로부터 시작했다. 올해 2.8.독립선언서와 3.1.독립선언, 4월 상해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된다. 나는 2월8일 동경 YMCA에서 2.8 독립선언 100주년을 기념하는 작은 세미나에 참가했다. 이 자리에서 조선 최초의 독립선언서와 인류 최초의 독립선언서인 1776년 미국 독립선언서를 비교한 글을 발표했다.

두 선언문은 143년의 시차, 동서양 문화의 차이를 넘어서 공통의 분모가 들어있다. 미국은 영국의 100년 이상 식민지로 살다가 독립을 주창하게 되고 8년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끌면서 독립이 되었다. 조선은 독립국으로 부터 출발해 일본 통치 10년에 접어들면서 독립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조선의 36년 식민지 시대는 일본의 태평양전쟁 패전으로 끝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개의 선언문은 식민지의 불만을 구체적으로 토로하고 민주주의 사회를 갈망하며 인간의 평등권을 쟁취하려는 공동의 목표가 설정되어있다. 이 목표는 인류의 공통적인 열망인지도 모른다.


미국의 독립운동은 한 세기를 지나며 식민지 대표의 참여 없는 영국정부가 일방적으로 세금을 식민지에 부과하는 불만에서 비롯했지만 조선의 독립운동은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된 후 한일합방 전 안중근 의사의 조선 초대통감 이등박문 저격으로부터 시작, 조선 내외에서 줄기차게 에너지가 움트다가 1919년 지성적으로 폭발한 사건이었다.

한일합방 전 미국에 망명한 서재필, 이승만, 안창호, 박용만이 독립운동을 일으켰으며 하와이 사탕수수밭에 온 조선 사람들은 어렵게 번 돈으로 독립자금을 모으고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1908년 샌프란시스코 부두에서 일본의 조선통치를 지원한 더햄 스티븐스를 저격한 장인환, 전명운 의사의 의거도 미국 속의 조선 독립운동 신호탄이었다.

2.8.독립선언서와 3.1.독립선언의 가장 큰 동인은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 제창이었다고 생각한다. 조선의 지성인들에게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는 희망이었고 자극제가 되었다.

두 나라의 독립선언서는 모두 젊은 문필가의 작품이었다. 젊은 그들은 이상향을 추구하고 있었겠지만 조선의 이광수는 33세 토마스 제퍼슨보다 더 큰 꿈을 꾸고 있었던 26세 청년으로 보인다. 우리는 이 두 젊은이들의 업적을 있는 그대로 가감 없이 평가해야 한다. 이들 또한 인간의 한계를 넘지 못했던 사람들이다.

<최연홍 시인·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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