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끄러운 대머리 산

2019-02-1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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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가주 한인들이 가장 자주 오르는 산은 샌가브리엘 산맥의 최고봉인 마운트 샌안토니오(Mt. San Antonio)일 것이다. 꼭대기가 바위산이라 대머리 산 또는 민둥머리 산이라는 뜻의 ‘마운트 볼디’(Mt. Baldy)로 더 많이 알려진 산이다.

LA에서 가까워 주말이면 이곳을 찾는 등반객이 많지만 해발고도가 1만64피트(3,070m), 백두산(2,744m)보다 훨씬 높은 마운트 볼디는 겨울마다 조난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위험한 산이다. 이 산을 750여회나 등반해 LA타임스에도 소개됐던 78세의 전문산악인 김석두씨가 2년전 목숨을 잃은 곳이 바로 이 산이다. 2010년에도 미셸 유씨가 조난사고로 사망했고, 2009년 한인 10명이 조난당했다가 구조된 적도 있다. 샌버나디노 카운티 셰리프국에 따르면 눈이 많이 오는 겨울에는 헬기가 출동해 조난객을 구조해야 하는 사고가 하루 10여건씩 있을 정도로 마운트 볼디는 겨울등반이 조심스런 산이다.

지난 주말 마운트 볼디 진입로에서 폭설로 차량이 통제돼 수백명이 산에 갇혀있다 내려온 해프닝이 있었다. 오랜만에 눈이 많이 내리자 설산 등정을 하려는 등반객이 많이 몰렸는데 악천후로 등산로 입구까지 올라가는 가파른 길이 결빙되어 장시간 통제된 것이다. 스노우 체인이 없는 차는 운행이 금지된 것은 물론 여러 건의 접촉사고까지 나는 바람에 상황이 악화됐다.


이날 발이 묶였던 사람 중에는 한인들도 적지 않았다. 코로나에 거주하는 S씨는 10여명의 지인과 함께 아침 일찍 산행을 떠나 12시경에 점심 먹고 하산하기 시작했는데 주차장에서부터 길게 늘어선 차량행렬이 움직이지 않더란다. 그때부터 8시간 동안 미동도 하지 않는 차 속에서 추위에 벌벌 떨며 기다려야 했는데 셀폰이 터지지 않는 지역이라 도대체 무슨 일인지, 언제 내려갈 수 있는지 영문도 모른 채 갇혀있었다고 한다. 집에도 연락을 못하니 집집마다 사고가 난 줄 알고 난리가 났고, S씨 딸도 셰리프국에 연락하여 겨우 상황을 알게 됐다는 것.

4륜구동 차량을 타고 있던 그는 도로가 오픈 된 후 조심조심 운전해 밤 12시 넘어 집에 도착했지만 스노우 체인이 없는 수십대의 차량은 산속에 고립됐고, 등산객들은 발을 동동 구르다가 차를 버려두고 몇마일을 걸어서 하산하거나 현지 산장에서 밤을 보낸 후 아침에 차를 타고 돌아왔다는 소식이다.

겨울산행은 각별히 주의해야하는 것이 상식이다. 특히 마운트 볼디는 등반로 경사가 굉장히 가파르고 바람이 거세기로 유명하기 때문에 올겨울 같이 춥고 눈이 많이 오는 시기에는 조난사고의 위험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다. 조난까지는 아니더라도 등반 중에 낙석이나 얼음덩어리를 맞아 다치는 일도 드물지 않고, 눈을 잔뜩 얹은 채 얼어버린 나뭇가지가 갑자기 떨어져 부상을 입는 일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등반 전문가들은 방한복, 스패츠, 아이젠, 피켈, 헤드 랜턴 등 겨울 등산장비는 필수적으로 갖출 것과 산에서는 날씨가 시간대별, 고도별로 달라지기 때문에 반드시 산악전문 일기예보 사이트를 체크할 것을 조언하고 있다.

모처럼 눈 풍년을 맞았다고 준비 없이 눈 구경하러 대머리 산에 오르는 사람이 더 이상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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