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평화에 기회를 줘야

2019-02-13 (수)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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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과 트럼프 간의 2차 북미정상회담이 오는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다. 한때 난기류에 휩싸인 듯 보였던 북미 간 대화는 2차 정상회담이 성사됨으로써 급물살을 탈 것이란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문제는 정상회담에서 어떤 성과가 나오느냐이다. 지난해 싱가포르 회담이 포괄적 합의를 끌어내는데 초점이 맞춰졌다면 이번 회담에는 구체적이고도 실질적인 합의를 도출해내야 하는 무거운 기대가 지워져 있다. 북미 정상이 만나 별 소득 없이 외교적 수사만 나열한 채 헤어진다면 비핵화 프로세스는 또 다시 공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망은 일단 긍정적이다. 당일로 끝났던 1차 정상회담과 달리 1박2일 일정이 잡혀있는 만큼 충분한 대화가 오갈 것으로 예상된다. 또 김정은과 트럼프 모두 이번 정상회담 성과가 절실한 상황이다. 북한으로서는 대화에 적극적인 트럼프의 임기 내에 경제발전을 위한 토대를 마련해야 할 절박한 처지에 놓여있다. 트럼프로서도 올해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성과를 내놓아야만 내년 대선을 유리하게 치를 수 있다.


구체적인 성과는 회담이 끝나고 뚜껑을 열어봐야 확인되겠지만 일단 비핵화, 그리고 관계정상화와 관련한 조치가 맞교환될 것으로 조심스럽게 점쳐진다.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가 일부 완화될지 모른다는 전망도 고개를 든다. 그렇게 된다면 북미관계뿐 아니라 남북관계에도 직접적인 여파와 영향이 불가피하다.

그래서일까. 2차 북미정상회담 발표가 나온 후 한국의 보수를 대표한다고 자임하는 자유한국당은 불편한 심기를 여과 없이 표출하고 있다. 특히 정상회담 일정이 자신들의 전당대회 날짜와 겹친데 대해 “북한이 자유한국당을 견제하려 전당대회에 맞춰 정상회담 일정을 잡았다”고 주장하며 ‘신북풍’ 음모론까지 제기했다. 공당의 주장이라 하기엔 너무 황당해 애처롭기까지 하다.

세상이 달라지고 있는 만큼 역사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봐야함에도 자유한국당은 여전히 냉전시대의 낡은 색안경을 통해 북한 문제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다. 북미 관계개선이 시급하고도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한국의 미래 생존과도 직결된 사안이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는 현재 침체의 늪에 빠져 있다. 정책 실패에도 책임이 있겠지만 구조적인 측면도 강하다. 새로운 패러다임과 돌파구를 찾지 못한다면 침체는 만성화 될 우려가 있다.

그 돌파구가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북한이다. “북한이 개방될 경우 한반도는 향후 20년간 지구촌에서 가장 활력이 넘치는 곳이 될 것”이라고 전망해 온 세계적 투자가 짐 로저스가 다음 달 북한을 방문할 예정이라는 소식은 그래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남북의 불화와 군사적 대립은 한국사회에 엄청난 기회비용을 떠안겼다. 매년 수십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군사비 지출은 차치하고라도 북한 문제와 관련한 남남갈등으로 한국사회는 오랜 세월 엄청난 갈등비용을 치러야 했다. 한반도에만 지워져 있는 이런 기회비용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다면 그것은 성장과 도약의 새로운 여력이 될 수 있다. ‘평화가 곧 경제’라는 말은 그저 추상적이고 허망한 구호가 아니다.

미소 냉전시대에 미국을 이끌었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일찍이 이런 사실을 간파했다. 그는 1953년 미국 신문편집인협회 모임에서 행한 연설에서 “군사적으로 무장을 하는 이 세상은 단지 돈만 낭비하는 게 아니다. 노동자의 땀과 과학자의 천재성, 그리고 어린이의 희망까지 낭비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중폭격기 한 대 만드는 데 들어가는 비용으로 좋은 시설과 설비를 갖춘 병원 두 개를 지을 수 있으며, 구축함 한 대 사는 데 8,000명이나 되는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 신축주택을 지불하고 있다”며 기회비용의 막대함을 실감나게 묘사했다. 이 연설의 제목은 ‘평화를 위한 기회(Chance for Peace)’였다.

후대를 걱정하는 책임 있는 대한민국 정치인이라면 당연히 아이젠하워처럼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한반도의 긴장을 누그러뜨리는 일에 사사건건 딴죽을 걸고 몽니를 부려서는 안 될 일이다. 지금은 평화에 기회를 줘야 할 때다. 이것을 거부한다면 그것은 자신들의 기회가 거부되는 결과로 되돌아오게 될 것이다.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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