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김대건의 숨결 톡, 전통문화 톡···이곳엔 이야기 망울이 터진다 (경기도 용인)

2019-02-08 (금) 글·사진(용인)=우현석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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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와집·주막 재현에 농악·줄타기, 한국민속촌엔 즐거움이 흐르고

▶ 김대건 신부 세례·영성체 받은, 은이성지에는 경건함이 머물고

경기도 용인은 수도권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면적이 넓은 편에 속한다. 게다가 지형이 서북쪽에서 동남쪽을 향해 가로로 길게 누운 터라 동선의 길이도 상당하다. 숨은 볼거리도 많아 하루에 섭렵하기에는 만만찮은 지역이 용인이다. 용인을 찾은 날은 모처럼 날씨가 쌀쌀했다. 오전10시 한국민속촌에서 여정을 시작할 때 쌀쌀한 날씨가 만만치 않게 느껴졌다. 그래도 민속촌 초입에 피워놓은 모닥불 위로 아지랑이가 아른거려 추위로 향해 가는 발걸음이 외롭지는 않았다.

지난 1974년 문을 연 한국민속촌은 초기에만 해도 한국의 전통문화와 민속을 재현한 유일한 곳으로 국민적인 관심을 받았다. 이후 인근의 에버랜드를 비롯해 지자체마다 세트장 등이 들어서면서 독점적 지위가 약해지기는 했지만 ‘수도권에서 가까운 위락시설’이라는 명성은 굳건히 이어가고 있다. 전통 기와집과 초가집을 비롯해 관가·반가(班家)·주막 등이 있고 가마터·유기공방·서당·약방·점집 등 조선시대 건물들을 재현하고 있다.


한겨울에 평일이니 한적하겠거니 지레짐작하며 들어선 민속촌에는 뜻밖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나들이를 즐기고 있었다. 민속촌은 상설공연으로 마상무예·줄타기·농악 등을 진행하는 한편 계절마다 다양한 이벤트로 관람객을 유치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오는 3월까지 진행되는 추억의 복고 체험 가운데 하나인 ‘벨튀(1980~1990년대 아이들이 벨을 누르고 도망가는 장난)’ 체험이 인기가 많은 편이다. 단독주택 대문의 벨을 누르면 ‘이놈 아저씨’가 문을 열고 나와서 쫓아오는 프로그램으로 관람객들이 피카추와 프레디 머큐리 분장을 하고 와서 벨을 누르고 인증샷을 찍는 등 인기를 얻고 있다. 이 밖에 매사냥, 빙어 얼음낚시와 함께 정월대보름을 앞두고 세시풍속 체험 등도 진행하고 있다. 기흥구 민속촌로 90

서울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는 동선을 잡을 경우 민속촌 다음으로 들러야 할 곳은 은이성지다. 은이성지는 한국 최초의 사제이며 순교자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1836년 모방(Maubant) 신부에게 세례성사와 첫 영성체를 받고 신학생으로 선발된 곳으로 한국 천주교회사상 첫 번째 사제 성소(聖所)의 열매가 맺어진 곳이다. 1845년 조선인 최초로 사제 서품을 받고 귀국한 김대건 신부의 첫 사목활동은 바로 이곳 은이공소를 중심으로 이뤄졌으며 김대건 신부는 이곳에서 순교 전 마지막 미사를 봉헌했다. 은이(隱里)는 숨겨진 마을이라는 의미로 이곳에 박해를 피해 숨어 살던 천주교 신자들이 교우촌을 형성해 붙은 이름이다. 은이성지에는 김대건의 일대기에 관한 자료를 정리해놓은 기념관도 자리한다. 처인구 양지면 남곡리 632-1

3월이 오면 용인에서 꼭 가봐야 할 곳이 한택식물원이다. 한택식물원은 1979년 이택주 원장이 개장한 이래 끊임없는 식물종 확보로 총 1만3,000여 초본과 목본을 보유한 국내 최대 식물원 중 한 곳이다.

이 원장은 애초에 이곳에 초지를 조성해 젖소와 한우를 사육했지만 소 가격이 폭락하면서 식물원으로 전환했다. 이 원장은 “목장을 접고 20만평에 나무를 심었는데 자꾸 죽었다”며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하라는 대로 했더니 더 죽어나가길래 전문가들하고 유럽에 가서 조사하고 오기도 했다”고 후일담을 들려줬다. 유럽에서 돌아오고 나서 유엔 가입국들 가운데 우리나라가 식물원이 없는 유일한 나라라는 것을 깨달은 이 원장은 “그렇다면 내가 한 번 해보겠다”고 마음먹은 뒤 호기롭게 뛰어들었다. 하지만 식물원 운영은 녹록지 않았다. 1980년대 말에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운영을 포기할 생각도 했다는 그는 “언론의 조명을 받고 유명해진 후 식물학자·석학들이 찾아와 칭찬을 하는 통에 우쭐한 생각이 들어 지금까지 하고 있다. 그래도 지금까지 버텨온 게 자랑스럽기도 하고 보람도 느낀다”고 말했다.

한택식물원이 보유하고 있는 식물종 1만3,000종 중에서 국내 종은 3,800종이며 나머지는 외래종이다. 그는 “전 세계 식물종은 25만종으로 지금 세계 각국은 종자를 하나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식물원을 돌아보던 중 이 원장에 이끌려간 양지바른 언덕배기에는 노란색 복수초가 겨울 추위를 뚫고 활짝 피어 있었다. 흔히들 나무 중에서는 매화가, 풀 중에서는 복수초가 가장 부지런한 봄의 전령이라고 한다. 기자는 복수초도 알고 있는 입춘을 잊은 채 살아가고 있었다.

<글·사진(용인)=우현석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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