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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 안전 불감증

2019-01-30 (수) 석인희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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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 불감증의 사전적 정의는 ‘모든 것이 안전할 것이며 위험은 없다고 생각하는 증상’이다. ‘설마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겠어,’ ‘설마 나는 안전하겠지’ 등의 생각을 동반한 안전 불감증은 여행지에 도착했을 때 더욱 극대화되곤 한다. 모든 것이 새롭기 만한 낯선 타지에서 철저히 이방인이 된 개인은 여행이 가져다주는 설렘에 취해 용감해지기 쉽기 때문이다. 기사를 쓰면서 접하게 되는 수많은 여행지 사건사고들의 이면에는 여행객들의 안전 불감증이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다.

지난 23일 캠핑에 나섰다 2주 동안 눈 속에 고립된 커플의 이야기(본보 26일자 A2면)가 신문에 실렸다. 이 커플을 구조한 LA 카운티 셰리프국 관계자는 “캠핑을 떠나기 전 커플은 조만간 폭풍우와 눈이 온다는 일기예보를 접했지만 이를 가볍게 여기고 캠핑을 강행했다”고 전했다. 두사람은 폭설이 내릴 수 있음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지만 ‘설마 무슨 일이야 있겠어’ 하는 마음으로 캠핑을 떠났다가 2주간 눈 속에 고립됐던 것이다.

이 커플은 가까스로 구조됐지만, 조금만 더 시간이 지체됐더라면 큰 변을 당할 뻔했다.
개개인의 소셜미디어 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오늘날에는 여행지에서 남기는 사진의 의미가 유독 커 여행객들의 안전 불감증에 방아쇠를 당기기도 한다. 지난해 요세미티에서만 10명 이상이 사고사를 당했는데, 이중 6명은 추락 사고로 숨졌다.


지난해 5월 18세 이스라엘 출신 소년 여행객은 셀피를 찍는 과정에 발을 헛디뎌 요세미티 국립공원 내 네바다 폭포 절벽에서 추락해 숨졌고, 10월 유명 블로거 커플은 사진 촬영지로 유명한 ‘태프트 포인트’ 절벽에서 추락해 숨졌다.

또 지난 21일 대만의 위산 국립공원에서는 산 정상에서 비키니 수영복을 입고 찍은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려 ‘비키니 등반가’로 유명하던 대만의 등산 애호가가 추락사고를 당해 숨진 채 발견되기도 했다. 요세미티, 그랜드 캐년 등에서 발생하는 사망사고에 대해 연구하고 책을 출판한 마이클 길그리어리 작가는 “사진이 여행객들에게 안전 감각을 떨어뜨리게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든 관광을 하기 위해서든 여행지에서 발생하는 여러 사건사고는 안전 불감증이 때때로 얼마나 위험천만한 사고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한국 외교부에 따르면 연간 미국을 방문하는 한국인 여행객 가운데 1,700여명이 여행 도중 안전사고를 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온 국민을 안타깝게 했던 캐나다 유학생 박준혁 군의 그랜드캐년 추락사고를 비롯해 매년 여행지에서 발생하는 비슷한 양상의 사고들은 우리에게 안전 불감증이 아니라 차라리 ‘안전 염려증’이 더 필요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언제라도 스스로가 사고 당사자가 될 수 있음을 인지하고, 조심 또 조심하는 자세만이 우리 모두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게 만들 것이다.

<석인희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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