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샌드라 오의 밤

2019-01-19 (토)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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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라 오의 밤
6일 베벌리힐즈의 베벌리힐튼호텔에서 열린 제76회 골든 글로브시상식은 샌드라 오(사진)의 밤이었다고 해도 되겠다. 샌드라는 이날 앤디 샘버그와 함께 시상식의 공동 사회자로 무대에 섰을 뿐 아니라 연기자로서도 TV부문에서 드라마 ‘킬링 이브’(Killing Eve)로 주연상을 탔다.

필자를 포함해 세계 50여 개 나라의 LA상주 기자로 외국에 송고하는 90명 정도로 구성된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가 주는 골든 글로브상은 영화 외에도 TV부문에 대해서도 시상한다. 샌드라는 이로써 아시안으로서는 처음으로 시상식 사회자가 되었을 뿐 아니라 1981년 TV시리즈 ‘쇼군’으로 일본 여배우 요코 시마다가 주연상을 탄 이후 최초로 같은 상을 받은 아시안 배우가 됐다. 샌드라는 이미 TV시리즈 ‘그레이즈 아나토미’로 조연상을 타 아시안 배우로서는 최초로 골든 글로브상을 두 번이나 타는 기록도 세웠다.

샌드라는 수상소감을 말할 때 식에 함께 참석한 부모님에게 허리를 굽혀 절하면서 한국말로 “엄마, 아빠, 사랑해요”라고 말해 부모님과 한국에 대한 사랑을 함께 표시했다. 샌드라의 사회와 수상은 식장에 앉아 있던 나의 가슴을 뿌듯하게 해주었다.

이날 시상식은 다양성을 찬양하듯 많은 흑인과 아시안 영화인들이 눈에 띠었다. 샌드라도 개막사에서 이들을 가리키며 “나는 처음에 이 무대에 서기가 겁이 났지만 당신들을 보고 아울러 이 변화의 얼굴들을 목격하기 위해 사회를 수락했다”고 말해 참석자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러나 샌드라와 앤디의 개막사는 너무 무사안일 해 진부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일체 정치적인 발언을 회피하고 그냥 쇼나 즐기자는 식으로 톡톡 쏘는 맛이 없어 심심했다.
이날 이변이라 할 정도로 크게 물을 먹은 영화는 브래들리 쿠퍼가 감독으로 데뷔하고 가수로 주연도 한 ‘스타 탄생’이었다. 이 영화는 드라마 부문에서 작품과 남^녀주연상을 탈 것으로 유력시 됐었으나 쿠퍼의 가수 애인으로 공연한 레이디 가가 작곡하고 노래한 주제가 ‘쉘로’ 하나만 상을 탔다.

이 부문 작품과 남자주연상은 영국의 록그룹 퀸의 리드싱어 프레디 머큐리의 삶을 다룬 ‘보헤미안 랩소디’와 프레디로 나온 라미 말렉이 각기 탔다. 드라마 부문 여자주연상은 레이디 가가 대신 ‘아내’에서 평생 독선적인 작가인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다가 뒤 늦게 독립선언을 하는 아내로 나온 글렌 클로스가 받았다. 모두 예상을 뒤엎는 선정이었다.
골든 글로브상은 작품과 남녀주연상에 한해 드라마와 코미디/뮤지컬 두 부문으로 구분해 시상한다.

이 날 가장 감동적인 발언은 클로스(71)의 수상소감이었다. 그는 “아내들은 남편과 자식들을 돌보는 사람들로만 여겨져 왔다”면서 “그러나 아내들도 자신의 꿈을 찾아 나설 수 있어야한다”고 말해 참석자들의 기립 박수를 받았다.

‘보헤미안 랩소디’ 외에 이 날 큰 승리 작들은 ‘그린 북’과 ‘로마’였다. 1962년 인종차별이 심하던 때 미 남부를 순회공연하는 흑인 피아니스트와 그의 인종차별주의자인 백인 운전사가 8주간의 여정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우정으로 맺어지는 실화다. 작품상(코미디/뮤지컬)과 각본상 그리고 흑인 피아니스트 역의 마허샬라 알리가 남자조연상을 각기 탔다. 대중의 입맛에 맞춘 이 영화가 같은 부문의 수상 후보작으로 비평가들의 격찬을 받은 ‘페이보릿’(The Favourite)을 제치고 수상한 것은 이변이라 하겠다.

멕시코감독 알폰소 쿠아론이 연출하고 흑백으로 촬영도 한 ‘로마’는 외국어영화상과 감독상을 탔다. 이 영화는 쿠아론의 소년시절 멕시코시티의 중류층 거주지인 로마에서의 성장기다.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은 이 영화가 작품상 후보에 오르지 못한 이유는 외국어영화는 작품상 후보가 될 수 없는 골든 글로브상의 규칙 때문이다. ‘로마’는 오는 22일에 있을 아카데미상 각 부문 후보발표에서 작품상과 동시에 외국어영화상 후보에도 오를 가능성이 크다.

한편 코미디/뮤지컬 부문의 남자주연상은 ‘바이스’(Vice)에서 체중을 40여 파운드나 늘이고 아들 부시대통령 밑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던 딕 체이니 부통령으로 나온 크리스천 베일이 탔다. 이 부문 여자주연상은 ‘페이보릿’에서 18세기 초 영국을 통치하던 변덕스러운 동성애자 여왕 앤으로 나온 영국배우 올리비아 콜먼이 탔다. 여자조연상은 ‘이프 빌 스트릿 쿠드 톡’(If Beale Street Could Talk)에서 1970년대 초 할렘의 시련을 겪는 젊은 흑인 아내의 강인한 어머니로 나온 레지나 킹이 탔다.

영화 부문 생애업적상인 세실 B. 드밀 상은 배우 제프 브리지스가 탔다. HFPA는 올해 새로 TV의 전설적 여류 코미디언 캐롤 버넷을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을 따 캐롤 버넷 생애업적상을 마련했다. 첫 수상자는 당연히 캐롤 버넷이었다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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