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란 배우와 관객 두 사람이 하는 행위를 말한다. 어떤 지식이나 객관적인 학문과는 달리, 예술이란 창조자가 제 아무리 위대한 작품을 남긴다해도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가치도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예술이 어려운 이유이며 아무나 할 수 없는 천재들의 분야이기도 한 이유이다. 실력은 쌓을 수 있지만 감동은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같은 손, 같은 노력으로 빚은 질그릇이라해도 혹자는 굴러다니는 개밥그릇, 혹자는 고려청자로 남는 것은 그것을 담아내는 영혼의 그릇이 다르기 때문이다.
흔히 바보와 천재는 서로 닮은 꼴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것은 그들이 운명적으로 가르쳐질 수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천재는 여러 측면에서 특출하고 창조적인 재능을 가진 자들을 말하지만, 詩나 예술 등 인간의 영혼을 다루는 분야에 있어서 우리는 흔히 뛰어나다고 해서 천재란 말을 함부로 붙이지는 않는다. 천재란 오히려 출발점에서 목표까지의 거리를 단축할 수 있는 그런 초능력자를 말한다기보다는 남보다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있는 자, 즉 아무도 흉내 낼 수도 없는 그런 개성을 가진 자들을 우리는 종종 천재라고 부르는지도 모른다. 독발적이며 수수께끼같은 존재… 물론 다르다고해서 누구나 천재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요 그 돌발적인 것이 색다를 뿐 아니라 신선한 감동을 줄 때 우리는 그것을 천재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천재를 위해서는 학교가 따로 필요없다. 학교는 가공하는 곳이지 질박한 원석 그대로를 만들어내는 곳은 아니기 때문이다.
음악사에 있어서 무소륵스키(무소르그스키, 1839-1881)는 가장 불가사의한 존재 중의 한 명이었다. 그가 남긴 음악은 많지 않았지만 그 어느 것 하나 인상적이지 않은 것은 없었다. 출신은 러시아였고 국민음악파에 속했지만 그렇다고 국민음악파나 낭만파로 분리될 수 있는 작곡가도 아니었다. 무소륵스키는 음악가였지만 음악가로서 생활에 보탬이 된 것은 (거의) 전무했고 음악을 위해 학교를 가 본 적도 없었다. 그의 음악 지식은 6살 때(부터) 어머니에게 배운 피아노와 선배 작곡가 발라키에프에게 받은 작곡 공부가 고작이었다. 피아노곡 ‘전람회의 그림’, 오페라 ‘보르스고두노프’ 등을 남겼지만 동시대에 크게 성공한 작품도 없었다. 더구나 생활고 때문에 술을 가까이 했고 42세 나이로 알콜중독으로 사망했다. 한마디로 실패한 인생이었고 실패한 예술가의 전형적인 삶이었다.
아이러니는 무소륵스키의 死後, 러시아와 유럽의 음악계는 그의 음악에 애달프도록 매달리게 되는데 특히 프랑스 인상파와 러시아 현대음악가들은 무소륵스키를 마치 그들의 시조나 되는 것처럼 떠받들게 된 것은 음악사에서도 불가사의였다. 아무데도 속하지 않았던, 말 그대로 고전파도 낭만파도 인상파도 아닌 한 무소속 낭인이 어떻게 그처럼 위대한 성취를 이룰 수 있었을까?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무소륵스키가 학교를 전혀 다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야성이 살아있는 예술가들은 대체로 학교를 견디기 힘들어 한다. 아니 무용지물일 경우가 더 많다. 야성은 가르쳐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배운다는 것은 야성이라는 원석을 다듬고 정제하여 아름다운 것으로 재창조하는 것으로서, 배운다는 것이야말로 어쩌면 원래있던 원석의 참맛을 변형시키는, 무소륵스키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곳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무엇을 배우냐가 아니라 그 내면의 그릇이 얼마나 큰 가에 있었다.
神은 자기만의 방법으로 다가가길 바라는 자들에게, 어쩌면 운명이라는 시련으로 연단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특히 무소륵스키야말로 음악을 단순히 학이시습하는… 귀로 듣고 배우는 단순한 예술이 아니라 마음으로 듣고 (마음으로) 창조하는 예술이라는 것을 이해했던 듯 했다. 청각장애자였던 베토벤보다도 무소륵스키만큼 음악을 단순히 귀를 통해 뇌로 전달되는 상상력의 미학이 아닌, 정신의 극점에서 도달할 수 있는… 감동의 본질이라는 것을 이해했던 작곡가도 없었던 듯 했다. 그것은 단순히 지식이나 열정만이 아닌, 애정과 영혼의 바다를 헤엄칠 수 있는 진실을 바탕으로하는 믿음… 서투르고 투박했지만 그의 처참한 참패는 오히려 그의 死後, 그를 처절하게 외면했던 神에 의하여 지옥의 영혼들조차 춤추게 하는 진실의 언어로 부활, 무소륵스키야말로 진정한 천재였다는 것을 말하게 하였다.
그가 남긴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는 차이코프스키나 글링카, 쇼스타코비치들도 해내지 못한 가장 위대한 러시아의 오페라로 우뚝 섰고 그의 독특한 가곡들… 피아노 곡 ‘전람회의 그림’ 등은 지금도 수많은 작곡가와 지휘자들이 앞다투어 편곡 (연주)하고 기타 등 수많은 악기로도 연주되는, 음악사의 그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한, 전무후무한 작품으로 남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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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