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황교안의 착각

2019-01-1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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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정국 당시 권한대행을 했던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본격적으로 정치를 해보겠다며 자유한국당에 입당했다. 본인은 딱 부러진 대답을 하고 있지 않지만 다음 달 전당대회를 앞두고 그가 정치무대에 오른 것은 당권과 대권을 의식한 포석이라 볼 수 있다. 당권을 먼저 잡지 않고서는 대권 가도를 뒷받침해 줄 당내 세력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과 탄핵사태에 적잖은 책임이 있는 황 전 총리가 현실정치에 나선 것은 각종 여론조사 결과에 고무된 결정으로 보인다. 보수진영의 잠재적 대권후보 지지율 조사에서 그는 22% 정도로 1위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이런 지지율은 오히려 그의 가능성보다 한계를 드러내 주는 것이라 봐야 한다. 박근혜를 여전히 따르는 태극기 부대를 주축으로 한 수구의 지지가 그에게 많이 몰린 결과이기 때문이다.

황교안은 박근혜 밑에서 법무장관과 총리를 거치며 ‘꽃길’을 걸었다. 좋든 싫든 그는 박근혜 정부의 상징적 인물 가운데 하나가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국정농단 2인자’라는 꼬리표가 따라 따니는 것이다. 지지율 확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 인물을 평가하는 척도는 여러 가지다. 그의 총리인준 청문회 당시 많은 의혹과 결격사유들이 제기됐었다. 담마진이라는, 100만명에 한 명꼴로 나타난다는 희귀 가려움증을 사유로 그는 군대를 가지 않았다. 대신 가려움증을 이겨내며 고시공부에 정진해 합격한 후 줄곧 공안검사로 출세가도를 달렸다.

황교안이 로토확률의 담마진 환자가 되지 말란 법은 없으니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그가 자동차세 체납을 밥 먹듯 하고 과태료까지 내지 않았다는 사실은 조금 더 심각하다. 왜냐하면 그의 평소 인식을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황교안은 대통령 권한대행 당시 과잉의전으로 여러 차례 구설수에 올랐다. 승용차를 타고 서울역 플랫폼에 진입한 일도 있었고 자신이 모셨던 대통령이 탄핵된 상황임에도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라는 명패와 시계를 만들어 입길에 오르기도 했다.

이렇듯 가벼운 처신도 문제지만 보다 더 심각한 것은 그의 가치관이다. 그가 ‘전도사’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신앙심이 깊다고 시비 걸 일은 아니지만 이것이 고위공직자의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면 가볍게 넘어갈 일은 아니다.

그는 공직생활 중 기독교에 편향된 발언을 많이 하고 자신의 책에서 근본주의적인 신앙관을 그대로 드러내기도 했다. 그리고 공안검사 출신답게 ‘국가질서’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온 인물이다. 아무리 좋게 봐주려 해도 21세기적인 가치와는 거리가 멀다. 다양성이 생명인 민주주의 지도자로는 더더욱 어울리지 않는다.

황교안이 정말 지도자가 되고 싶다면 입당에 앞서 먼저 국정농단에 대해 사과하는 용기를 보였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회피와 동문서답으로 일관했다. 그는 스스로를 기성정치에 물들지 않은 참신한 인물이라 여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것은 안타까운 착각이다. 참신함의 생명은 새로운 가치에 있으며, 그는 이런 가치와 너무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황교안이 링에 오름으로써 일단 자유한국당 경선 흥행에는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만약 황교안의 정치생명이 길어지고 세가 확산된다면 그것은 보수가 그만큼 더 퇴행하고 있다는 징후로 받아들여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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