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벼움으로, 그러나 깊게

2019-01-12 (토) 박경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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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초, 조촐한 가정에 열 쌍의 부부가 모였다. 모두가 초로에 들어선 나이, 그 중에서 우리가 좀 젊은 것도 같았다.

새로 이사한 동네에서 아직은 이름도 얼굴도 익숙하지 않은 여인들 틈에 끼어 자리에 앉자 두 개의 교자상 위에 음식들이 가득하다. 구절판과 갈비찜, 구색을 맞춘 모듬전, 탕평채, 백김치 등과 손수 빚은 만두가 먹음직스런 떡만두국이 차려져 있다. 늙어가는 남자들은 커다란 식탁에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고, 교자상의 풍성한 음식은 여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상 앞에 놓인 색동방석 위에 앉아 음식들을 바라보니 이제는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고국의 날들이 떠올랐다.

아이들의 돌, 백일 상을 차릴 때였는지, 신혼 초 집들이였는지 그렇게 음식을 차려놓고 손님을 맞던 때가 생각났다. 남자들끼리, 여자들끼리 앉아 음식을 나누며 담소하던 광경. 성별을 나누어 앉아 식사를 하는 것도 우리의 풍습이었다.


우리를 초대한 집주인은 수십 년의 세월을 미국에 살면서도 고국의 상차림을 고수하고 있었다. 어느 집이든 초대를 받아 가면 뒤뜰 화덕 위에 구운 고기를 종이 접시에 담아 야채와 함께 먹는 때가 많았다. 화덕 앞에서 맥주를 병째 마시며 피어오르는 연기에 한쪽 눈을 찌푸리면서도 즐거워하던 시간들. 어느덧 그런 초대에 익숙해진 나는 이번 신년 초대의 상차림에 왜 그런지 숙연해졌다. 어릴 적 고향 집 음식 맛이 입안에 감돌기도 했고, 이민을 오느라 두고 온 살림살이들이 새삼 생각났다. 어머니가 혼수로 해주셨던 교자상과 꽃방석, 찬합과 구절판, 찻잔과 주발. 수십 년 전의 그것들이 바로 어제 두고 온 듯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것은 물건에 대한 애착이라기보다 사실은 그리움이었다.

상 앞에 둘러앉은 여인들은 집주인의 음식솜씨에 감탄하며 더러 희끗거리는 머리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모두가 떠나온 사람들이었다. 젊어서 왔거나 나이 먹어서 왔거나 그들도 어쩌면 두고 오기 아까운 무엇을 다 떨치고 왔을 것이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내 옆자리에 앉은 여인은 잘 늙은 미국인 남편을 한국 남자들 사이에 앉혀두고서 아주 오래전의 자기 집안 역사를 말하기 시작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으로 이주했던 외가와 겨우 네 살에 부모를 따라갔던 그녀의 어머니, 그들은 고국이 해방되자 일본에서 자리 잡았던 터전을 버리고 돌아왔단다. 하지만 너무 어린 나이에 떠나 한국말을 할 줄 모르던 그녀의 어머니는 고국 사회에서 몹시 천대를 받았다고 했다. 전쟁이 지나간 몇 년 후 그 어머니의 막내로 태어난 그녀는 또 젊은 날 미국으로 건너와 미국인과 결혼했다. 어찌 보면 개인의 가정사 안에 거대한 역사의 물결이 흐르고 있었지만, 말을 이어가는 그녀의 표정은 평온하기만 했다. 그녀의 삶이 이 땅에 잘 정착했음이 짐작되었다.

문득 나는 정말 여기에 정착해 살고 있는 걸까,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싶어졌다. 늘 어디로든 떠나야할 것 같은 맘에, 한동안 살던 도시를 떠나 새로 둥지를 튼 이 골짜기에도 단란한 한인 공동체가 있다는 건 참 다행이고 반가운 일이다. 이제는 한 자리에서 늙어가자고 다짐해보지만, 마음 한쪽이 자꾸 부초처럼 떠돌고 있음은 운명에 깃든 방랑벽 때문인가. 아니면 본래 인간의 본성이 떠돌이인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오래전 인류는 수렵을 하며 떠돌았다지 않던가. 최소한의 생활기구와 머물렀던 천막을 걷어 이주에 이주를 거듭하던 인류가 농경사회로 정착하면서 사실은 많은 문제들이 생겨났다고 한다. 그 오랜 정착의 역사 속에 땅과 물질에 대한 애착과 가부장제가 생기고, 그로 인해 파생된 온갖 드라마가 곧 인류의 역사이다.

문득 어느 책 해설에서 읽은 12세기 유럽의 사상가 성 빅토르 휴의 말이 떠오른다.

‘자신의 조국만 좋아하는 사람은 아직 어린아이와 같다. 어디를 가도 자신의 조국처럼 느끼는 사람은 강한 사람이다. 그러나 이 세상 모두가 다 타국처럼 느껴지는 사람이야말로 완성된 사람이다.’

그렇다면, 빅토르 휴의 말을 핑계 삼아 올해도 이 세상 전체를 타국처럼 살아보기로 한다. 사람과 물질에 애착하지 않는 가벼움으로, 그러나 순간을 성찰하는 깊음으로 살다보면 나이 먹음도 아름답지 않겠는가.

<박경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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