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푸시 팩터’ 트럼프

2019-01-1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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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들 간의 인적인 이동을 초래하는 요소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끌어당기는 요소인 ‘풀 팩터’(pull factor)이고 다른 하나는 밀어내는 요소인 ‘푸시 팩터’(push factor)이다. 이 두 가지 요소가 상호작용을 하면서 이민 등을 통한 인적 이동이 이뤄진다.

미국경제가 괜찮고 중남미 국가들의 정치적 경제적 혼란이 극심할 경우 이 지역으로부터의 밀입국은 예외 없이 급증하는 현상을 보인다. 끌어당기는 요소와 밀어내는 요소가 동시에 강력히 작용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미국경기는 침체에 빠지고 멕시코의 일자리 상황이 괜찮을 때는 합법과 불법이민 모두 감소한다.

한국도 정치적 억압이 심했던 독재시절 많은 이들이 미국이민을 택했다. 또 미국에서 공부를 마친 유학생들이 귀국을 포기한 채 그냥 눌러 앉는 경우도 많았다. 이후 한국경제가 도약하고 정치적 민주화가 이뤄진 이후 미국으로의 이민행렬은 주춤해진 상태다. 한국의 밀어내는 요소와 미국의 끌어당기는 요소가 모두 약해진 탓이다.


하지만 여전히 전 세계인들에 의해 꿈의 이민행선지로 가장 먼저 꼽히는 나라는 미국이다. 그럼에도 정작 미국인들 가운데 미국을 떠나 다른 나라로 이민가고 싶다는 사람들은 갈수록 늘고 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최근 발표된 갤럽여론조사에서 미국을 영구히 떠나 다른 나라로 이민가고 싶다고 밝힌 응답자는 18%에 달했다. 지난해 조사 때의 16%보다 늘었다. 오바마 시절 10%에 비해서는 거의 두 배 가까운 수치다.

이민가고 싶다고 밝힌 미국인들 계층을 살펴보면 이유가 보다 선명히 드러난다. 여성, 젊은층, 저소득층이 압도적이다. 여성들의 20%, 또 30세 이하 젊은이의 30%, 하위소득 20% 계층 가운데 30%가 이민의사를 밝혔다. 특히 30세 이하 젊은 여성들 가운데 다른 나라로 이주하고 싶다고 밝힌 비율은 무려 40%에 달했다. 자신들이 받고 있는 사회적 경제적 차별과 암울한 미래에 대한 절망감이 이민의사로 표출된 것이라 봐야 한다.

그동안 정부의 성향과 정책의 영향으로 인구이동이 이뤄진 경우가 없지는 않았다. 오바마 정부 시절 이민을 떠나고 싶다고 밝힌 미국인 비율은 훨씬 낮았지만 세금정책과 징수강화 등에 불만을 품고 미국국적을 포기한 부유층은 상당수에 달했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많은 일반 국민들이 미국을 떠나고 싶다고 밝힌 적은 없었다.

트럼프 지지자 가운데 이민의사를 밝힌 비율은 7%였던 반면 반대 국민들 가운데는 22%에 달했다. 정치학자들과 여론전문가들은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심화된 양극화가 이런 여론의 배경이 되고 있는 것으로 풀이한다. 대통령 지지여부가 ‘푸시 팩터’가 된 것은 유례없는 일이다.

물론 이민을 가고 싶다는 욕구와 실제 이민은 다르다. 하지만 미국의 장래를 젊어질 계층이 토해내는 좌절감을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트럼프는 미국에 들어오는 것을 막는 일에만 골몰할 것이 아니라 미국을 떠나려는 국민들 마음을 붙잡는 일에도 신경을 써야한다. 국민들이 자꾸 떠나고 싶어 하는 나라는 ‘위대한’이란 수식어와 거리가 너무 멀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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