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야담과 괴담

2019-01-09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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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 때 영의정을 지낸 김재찬은 세종 때의 황희와 함께 조선조를 빛낸 명재상으로 꼽힌다. 할아버지는 판돈녕부사를 지낸 김상석, 아버지는 영의정을 지낸 김익. 그러니까 조선조 후기 정권을 장악한 서인의 세력가 중에서도 아주 막강한 세력가 출신이다.

그 김재찬이 젊은 관리시절 하루는 궁의 숙직을 들게 됐다. 밤이 늦은 시각에 왕은 잠이 오지 않아 김재찬을 불러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던 중 병으로 며칠째 조회에 나오지 못한 김재찬의 아버지의 안부를 묻다가 환관을 불러 인삼을 꺼내 하사했다.

다음 날 김재찬은 왕이 하사한 인삼을 자랑스럽게 아버지에게 드렸다. 그러자 떨어진 것은 불호령이었다. “정승이 아프면 군왕은 사절을 보내 위문하고 또 약을 보내는 법이다. 그런데 너는 한밤중에 왕이 사사로이 내린 인삼을 받고 좋아한다는 말이냐”며 야단을 친 것.


며칠 후 아버지의 병세를 묻는 왕에게 그는 야단맞은 대로 고했다. 그러자 왕은 자신의 허물을 깨닫고 바로 사절을 보내고 약을 내렸다.

김재찬의 젊은 시절의 또 다른 에피소드. 새로 어영대장으로 이창운이 기용됐다. 정조 때니까 서인의 서슬이 퍼런 시절이다. 그런데 무인출신에다가 북인 계인 그가 등용된 것이다.

어영대장에 등단하면 당하문관 중에 종사관 한 명을 뽑는 것이 으레 있는 일이었다. 한미한 무인출신이다. 이런 경우면 이름 없는 문관을 종사관으로 뽑는 것이 당시의 상식이었다.

이창운은 그런데 명문출신 김재찬을 종사관으로 지목했다. 그 선택에 기분이 상한 김재찬은 신고도 안 했다. 아예 군문에 나가지 않은 것. 그러던 어느 날 어영청 군사들이 김재찬의 집을 덮쳤다. 참죄(斬罪)에 해당하는 군율 위반으로 체포에 나선 것이다.

아버지 김익은 묵묵히 바라보다가 서찰을 보냈다. 어영대장이 정승의 서찰을 받아보니, 완전 백지였다. 정승으로서는 군율을 어긴 죄인을 두둔할 수 없다. 그렇지만 아버지로서 아들이 목이 달아나는 것도 볼 수 없다. 그런 뜻을 백지서찰로 전한 것.

이창운은 참형을 면해 주고 대신 반년동안 새벽에 벌로 번을 들게 했다. 북인출신인 그가 서인의 거두 김익의 아들을 종사관으로 뽑은 것은 당색을 떠난 심모원려의 결정이었다.

병란이 발생했을 때 평안도와 황해도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 지식을 전하기 위해 그는 훗날 정승반열에 오를 가능성이 큰 젊은 관리들을 눈 여겨 봤다가 김재찬을 선택한 것.


벌번을 받는 동안 김재찬은 어영대장의 특별 독대 과외를 받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북인출신에 무인이라고 경멸하던 그의 인품에 감복, 평생의 스승으로 모시게 됐다.

순조 11년 마침내 병란이 발생했다. 홍경래 난이다. 문약에 빠져있던 조정은 혼비백산,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홀로 그 난을 수습한 사람은 김재찬이다.

30대 초의 청와대의 일개 사무관이 육군참모총장을 호출하자 달려가 만났다. 그것도 군장성인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타이밍에. 그런데도 청와대는 문제의 사무관 변호에만 바쁘다.

군의 최고명예라고 할 수 있는 육군참모총장의 처신도 그렇다. 청와대의 파워가 그렇게도 두려웠는지…. 한마디로 코미디도 그런 코미디가 없다.

위계질서도 없다. 공직자로서의 금도(襟度)니, 품위 같은 것은 아예 찾아볼 수도 없다. 서울 청와대 발로 전해지는 괴담들. 듣노니 나오는 것은 한숨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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