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블록체인과 민주주의

2019-01-07 (월) 송윤정 금융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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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과 민주주의

송윤정 금융전문가

2019년 1월3일이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최초의 암호화폐 비트코인의 10주년이다. 암호화폐 세계에선 정체불명의 사토시 나가모토가 기술적 논문을 발표한 2008년 10월31일을 비트코인의 탄생일로 간주해 지난 10월에 10주년을 맞아 많은 행사와 글이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논문은 기술적 가능성을 제시한 것일 뿐, 실질적으로 최초의 블록 genesis block을 탄생시킨 2009년 1월3일이 비트코인의 탄생일이라 본다.

10년이 됐어도 여전히 블록체인이 뭔지 모르겠다, 비트코인은 사기꾼들이 만들어낸 거라는 이들이 많다. 블록체인이 뭔지 모르겠다는 이들에게 내가 비유로 들려주는 경험담이 있다.

2017년 봄, 맨해턴 남쪽 금융가의 빌딩에 컨퍼런스에 참석하러 갔을 때다. 회전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자 엘리베이터에 닿기 전에 경비원이 서있는 검문소를 마주쳤다. 경비원은 빌딩 출입 배지가 없는 내게 옆에 있는 계단을 가리키며 계단 한 층을 내려가서 반대편 문 쪽에 있는 검문소를 통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맨해턴의 큰 건물들이 그렇듯이 이 건물도 한 블록을 차지해 남쪽과 북쪽으로 난 두 입구가 있었다. 나는 남쪽 문으로 들어섰는데, 계단을 내려가 지하로 한 블록을 걸어 맞은 편에 다다라 다시 계단을 올라가서 북쪽 입구의 검문소로 가야 했다. 북쪽 검문소의 경비원이 그 빌딩의 방문객 명단을 가지고 있어 그곳에서 체크인 해 검문을 지나야 엘리베이터에 다다를 수 있었다. 검문을 지나니 행사가 있는 2층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는 남쪽 검문소 바로 옆에 있어 또다시 끝에서 끝으로 달려와 엘리베이터를 타야 했다.

이것이 블록체인 없는 세상에 사는 우리 모습의 축약판이다. 중앙집중화된 데이터로 불필요한 단계를 여럿 거쳐야만 하는 불투명하고 비효율적인 세계.

두 검문소 경비원이 각각 태블릿을 가지고 있고, 방문명단이 디지털화 되어 한쪽 태블릿에서 체크인할 때 동시에 업데이트가 된다면 방문객은 이런 불편을 겪지 않아도 된다. 블록체인은 모든 디지털화한 자료를 분산저장해 관련자 모두에게 실시간 업데이트를 보여줄 수 있는 기술이다. 이해 관계자가 많을수록 현재 비효율성이 많을수록 이 기술이 적용될 때 혜택이 크다.

하지만 명확한 혜택이 눈에 보인다 해도 이 기술이 광범위하게 채택되기까지 넘어야할 산이 많고 크다. 그 중 가장 큰 문제는 관련된 모든 이의 참여가 필수적인데 소유권과 혜택이 누구에게 돌아가느냐를 규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세계 최대 해운업체 머스크와 IBM이 글로벌 물류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블록체인 플랫폼을 제안했다. 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했을 땐 관련 업체들이 모두 모여 모임을 할 때마다 이견조율이 안 되고 의사결정을 내릴 수 없어 결국 IBM과 머스크 주도로 조인트벤처를 설립해 플랫폼을 완성해 출범했다. 하지만, 완성된 플랫폼의 소유권이 두 기업이 설립한 조인트벤처에 있으니 경쟁 관계에 있는 물류 기업들은 그 네트워크에 참여하기를 거부한다.

이런 면에서 블록체인과 민주주의는 비슷하다. 때로는 혜택이 직접 내게 돌아오지 않는 듯해도 모든 이가 주인의식을 갖고 참여하는 것, 서로 경쟁 관계에 있더라도 협력하는 것이 필수적인 시스템이다. 근시안적으로 내 이익과 소유에 집착해서는 결코 이룰 수 없다. 블록체인 탄생 10주년을 맞으며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이 시대를 고민하게 된다.

<송윤정 금융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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