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국식 나이’ ‘미국식 나이’

2019-01-03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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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기자 시절 한국으로부터 받은 뉴스를 처리할 때 종종 성가셨던 것은 기사 속 인물들의 나이를 바꾸는 일이었다. 한국과 미국의 나이 계산법이 다른 탓이었다. 한국기사에 언급된 나이는 대개 한국식이다. 보통사람들이라면 그냥 한국식으로 내보내도 무방하겠지만 유명 스타나 미국에서 활약하는 프로스포츠 선수들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독자들의 관점에서 표기해주는 것이 예의라 생각돼 그들의 생년월일을 확인, 미국식 나이를 계산했던 기억이 난다.

이 모든 것은 한국만이 유독 독특한 나이 계산법을 갖고 있어 생기는 혼란이다. 한국은 너무 많은 나이 계산법을 갖고 있다. 외국인들은 물론 한국인들조차 헷갈려할 정도다. 한국에서는 세 가지 나이가 통용된다. ‘세는 나이’와 ‘만 나이’, 그리고 ‘연 나이’다.

‘세는 나이’는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한 살이 되는 것으로 본다. 이 방식에 따르면 2018년 12월30일 태어난 아기는 2019년 1월1일 두 살이 된다. 태어나자마자 한 살이 됐고 새해를 맞아 곧바로 한 살을 더 먹었기 때문이다. 반면 1월1일 생은 한 살이다. 불과 이틀 차이로 한 살이 어린 게 된다. 하지만 2018년 12월20일 생을 ‘만 나이’로 계산하면 다음 생일이 돌아오는 2019년 12월30일까지는 0살이다. 비슷한 시기에 태어났음에도 졸지에 나이가 두 살이나 차이 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연 나이’는 금년도에서 태어난 해를 빼는 것으로 병역법 등 행정적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개념이다. 한국 기사들에 언급되는 나이도 대개는 연 나이다. 그래서 생일을 기준으로 한 미국식 만 나이를 계산하기 어려운 것이다.

세는 나이를 사용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하다. 같은 동양권인 일본과 중국도 세는 나이를 사용해오다 오래 전 국제적 기준이 된 만 나이로 바꿨다. 일본은 1902년 만 나이 사용 법령을 만들었으며, 중국도 1960년대와 70년대 문화혁명 당시 세는 나이를 ‘허세’, 즉 ‘빈 나이’라 해 사용을 금지시키는 조치를 취했다. 한국 역시 1962년 민법상 공식적으로는 만 나이를 쓰도록 했지만 국민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여전히 세는 나이를 사용하고 있다.

왜 한국인들이 이토록 세는 나이를 고집하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동양권에 0의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란 얘기도 있고 “태교를 중시하는 문화 속에서 엄마 뱃속에서부터 한 살로 보는 정서가 있어 그런 것 같다”고 풀이하는 문화학자도 있다. 유독 나이를 기준으로 위아래를 따지는 한국식 서열문화는 세는 나이의 생명력을 지탱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외국인들의 눈에 이런 나이 계산법은 이상하게 비춰질 수밖에 없다. 캘리포니아 전원지역에 거주하는 한 한인이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이웃 주민들과 많이 친해졌지만 이들에게 한국식 나이를 이해시키는 데는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한 것을 읽은 적이 있다. 그는 “한국도 이제는 떡국이 아닌 생일 케이크를 먹어야 한 살을 더 먹는 국제표준에 맞춰가야 한다”는 생각을 밝혔다.

뜻밖에도 몇 주 전 40여 년 연락이 끊겼던 중학교 동창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보고 싶어 수소문했다는 그는 한국 동창들의 근황 사진을 보내줬다. 사진 속 한국 동창들 모습에서는 미주지역 동창들보다 세월의 흔적이 더 묻어나는 것 같다. 아마도 미국식보다 한 살 더 많은 나이를 짊어지고 사는데서 오는 무게감의 흔적일지도 모르겠다. 이왕이면 미국식 나이가 한국식보다 낫다는 생각을 점점 더 하게 되는 건 그만큼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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