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노동법이라는 이름의 올가미

2018-12-27 (목) 이신우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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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엘에이 다운타운 번화가에서 의류 생산업을 시작했다. 80~90명 정도의 종업원을 거느린 중소기업이다. 디자인, 샘플 제작, 재봉틀 수리, 그리고 전기 문제까지 내 손으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밑천 삼았다. 정직을 기본으로 관련업체와 연결하여 20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 동안 한 자리를 지켰다. 많은 재산을 비축하지는 못했어도 같은 업계에서 본이 되는 업체란 찬사를 많이 들었고 주지사가 주는 표창도 받았다.

어느 날 나는 피고소인이 되어 “관련 서류를 지참하고 노동청으로 출두하라.’는 통지를 받았다. 개업 초창기부터 함께한 빅토리노라는 일꾼이 원고였다. 1년 365일을 아침 7시부터 저녁 10시까지 5년(60개월, 1.825일)간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한 시간 외 수당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속된말로 기가 찰 노릇이지만 어쩔 수 없이 노동청이 요구하는 증빙서류를 들고 노동청(법원)으로 갔다. 본청 관리는 서류를 열어보지도 않고 밀쳐놓으며 고소인과 합의를 종용했다. 피고가 제출한 서류를 검토하여 적법한 판결을 해야 하는 곳이 노동법원인데 자기들이 요구한 서류를 검증도 하지 않고 무조건 합의부터 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한마디로 거절했다. 공장을 운영해온 20년 동안 공장이 문을 닫는 시간이 평일은 오후 6시, 토요일은 12시로 정해져있다. 일요일과 공휴일은 빌딩 자체가 닫힌다. 설날과 성탄절에도 일하고 밤 10시까지 연장근무를 했다는 원고의 터무니없는 주장은 명백하게 잘못된 것이 입증되므로 고소 자체가 성립될 수 없는 사안이다.


그런데도 “당신 죄를 인정하고 합의 하라” 는 강압이었다. 가주 노동청장에게 탄원하며 1년을 싸운 결과는 원고가 요구한 5만달러의 3배가 넘는 15만달러의 벌금이었다. 합의하라는 명을 따르지 않고 윗사람에게 알려 질책을 듣게 했다는 괘씸죄까지 추가된 것이었다. 공탁금을 걸어야 항소가 가능한 법령의 모순 때문에 억울한 감정을 삭이며 변호사의 조언에 따라 파산신고로 문제를 해결했다.

연방 이민국은 불법 체류자, 밀입국자의 취업을 막기 위하여 I-9이란 양식의 서류를 쓰게 한다. 그러나 노동청에서는 ‘신분 불문하고 고발 환영’이라며 입소문으로 광고를 낸다. 변호사들이 풀어둔 뚜쟁이의 권유에 따라 노동청을 찾아가면 365개의 빈칸에 출퇴근시간을 적을 수 있게 5년분의 폼을 나누어준다. 그 자리에서 60개월을 매일 밤 10시까지 일했는데 시간 외 수당을 주지 않았다고 적어내면 그들이 계산한 금액을 수정 또는 확인 없이 받아놓고 고용주를 호출하여 합의를 종용하거나 벌금을 부과한다.

몇 년 더 해보고 싶었으나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는 말처럼 더 이상 사업하기가 싫어졌다. 다른 종업원 모두가 언제든 변호사의 꼬임에 빠져 같은 일을 꾸밀 수 있다는 가능성에 이때가 그만둘 때라 생각하고 미련 없이 사업을 접었다.

역설일지 모르지마는 불법체류자가 미국 시민의 합법적인 사업장에 고용되어 있다면 당국에선 자국민을 옹호하는 측면에서 인권을 지켜주고 영업이익을 극대화시켜주면 좋겠다. 불법체류자의 인권을 앞세워 그들을 먼저 편들고 일자리 열어둔 사업자를 죄인으로, 또는 임금 착취자로 만들어 사업 의욕을 꺾는 것은 쥐어짜기 식 세수증대를 위해 만든 ‘법이라는 이름의 올가미’다.

지금도 사업을 하는 지인들이 “적당한 시기에 잘 그만뒀다”는 말로 인사를 해온다. 재봉틀이 돌던 그 자리에 지금은 고급 콘도가 버티고 서있다.

<이신우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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