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버핏의 기부와 우리의 기부

2018-12-21 (금) 권정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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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적 부란 어떤 것일까. 억만장자 전 뉴욕시장 마이클 블룸버그가 명쾌하게 정리를 했다. 거대한 부의 현실이란 ‘(평생) 다 쓸 수도 없고 (죽을 때) 가지고 갈 수도 없는 것’이라고 했다. 쓸데는 많고 가진 것은 적은 우리 서민들은 상상할 수 없는 ‘4차원’의 세계이다.

그렇다면 써도 써도 흠집도 나지 않는 태산 같은 재물을 어떻게 할 것인가. 최선의 방법은 가장 큰 만족을 주는 일에 쓰는 것. 바로 기부, 자선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가 ‘기부서약(Giving Pledge)‘ 편지에 담은 내용이다.

부의 피라미드 최정상 부자 한명의 재산이 피라미드 하부 1억 6,000만명이 가진 것 보다 많은 기현상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는 부자에 대한 반감이 깊지 않다. 불평등에 대한 분노가 부자 개인에 대한 분노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부자는 자선을 의무로 여기는 오랜 전통과 상관이 있다. 최고 부자 순위와 아울러 최고 기부자 순위가 늘 발표되는 배경이다,


지난 10월 포브스는 2017년 기준 최고 기부자 50명을 발표했다. 1위는 4년 연속 선두주자인 워렌 버핏. 지난해 28억 달러를 기부했다. 빌 & 멜린다 게이츠 재단에 20억 달러, 나머지는 사별한 부인 수잔 톰슨 버핏 재단과 세 자녀가 설립한 3개 재단에 나눠서 기부했다.

2위는 빌 게이츠 부부. 에이즈, 폐렴, 말라리아 퇴치 재단 등에 25억 달러를 기부했다. 3위는 18억 달러를 기부한 블룸버그. 월튼 가족, 조지 소로스, 마크 저커버그 부부가 뒤를 이었다.

자선을 행하지 않으면 아무리 부자라도 맛있는 요리가 그득한 식탁에 소금이 빠진 것과 같다고 탈무드는 말한다. 가질수록 나눠야 맛인데 혼자 움켜쥐면 인생의 참 맛을 알 수 없다는 말. 맛없는 인생이라는 말이 된다.

그렇다고는 해도 미국 억만장자들의 기부는 그 규모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거의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대규모 기부 전통은 19세기에 시작되었다. 국제금융인으로 거부가 된 조지 피바디가 선구자이다. 동부의 여러 대학, 도서관, 박물관 등에 피바디 이름이 붙어있는 것은 19세기 중반 그의 기부와 자선의 결과이다. 그는 미국 자선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리고는 30년쯤 후 피바디를 모델 삼아 자선사업을 전국 단위로 펼친 인물이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이다. 카네기는 ‘부자 철학’이 분명했다.

19세기 후반 미국에는 자수성가 부자들이 많아지고 신흥 부자계급이 형성되면서 부의 불평등 현상이 깊어졌다. 이에 대처하기 위해서 부자들은 검소한 생활을 하고 남는 재산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그는 부자들에게 훈계를 했다. 백만장자가 재산을 가진 채 죽으면 정부는 세금을 호되게 매김으로써 그 이기적이고 가치 없는 삶을 규탄해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당시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부자의 책무 전통은 살아서 이어졌다.


버핏과 게이츠가 주도하는 ‘기부서약’은 억만장자들이 재산의 절반 이상을 기부하겠다고 약속하는 캠페인이다. 현재까지 22개국 출신 186명의 부호들이 동참했다. 미국인이 대부분이고 한국인은 없다. 그들이 기부서약을 하면서 쓴 편지를 보면 그들의 통찰이 보인다.

버핏은 재물의 효용성을 말한다. 순자산 840억 달러로 추정되는 그는 1% 즉 8억4,000만 달러 정도만 그와 가족들이 쓰고 나머지 99%는 기부하겠다고 서약했다. 그 막대한 재산을 기부하는 그의 논리는 이렇다. “1%면 우리 가족이 평생 쓴다. 그 보다 더 많이 갖는다고 해서 우리가 더 행복해지거나 더 평안해지지 않는다. 반면, 나머지 99%는 다른 사람들의 보건과 복지에 지대한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러니 답은 나와 있다. 필요한 만큼 갖고 나머지는 사회에 환원할 수밖에.”

게이츠는 책임의식을 강조한다. “감히 상상도 못한 큰 재산을 갖는 축복을 받았다. 엄청난 선물인 만큼 그걸 현명하게 잘 써야 한다는 책임감 또한 엄청나다.” 그 결과가 모든 어린이들이 평등한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보건, 교육 등의 사업이다. 1994년 재단 설립 후 이들 부부가 자선사업에 기부한 총액은 350억 달러를 넘는다.

부자들의 수십억, 수백억 달러 기부 앞에서 우리의 작은 기부들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버핏이 정답을 말했다. 액수로만 보면 자신의 기부가 크지만 상대적으로 보면 다른 사람들의 기부가 훨씬 크다고 그는 말한다. 교회에 헌금하고 학교나 비영리단체에 기부하느라 많은 사람들은 가족과 영화 볼 것을 안보고, 외식할 것을 안 하며 희생하는 반면 자신은 99%를 기부한다고 해서 뭔가를 포기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 누구의 기부가 더 큰가.
블룸버그는 “인생을 완전하게 즐기고 싶다면 - 기부하라”고 말한다. 기부를 통해 사람들의 삶에 변화를 주고 그걸 눈으로 지켜보는 것만큼 만족스런 경험은 없다고 말한다.

부자들 같이 호화로운 식탁은 아니더라도 우리 소박한 인생의 밥상에도 소금을 빠트릴 수는 없겠다. 올해의 마지막 날들을 풍성한 나눔으로 마무리하자. 맛깔스런 인생을 위하여!

<권정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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