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국과 국수주의

2018-12-13 (목) 김순진 교육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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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과 국수주의

김순진 교육심리학 박사

지난 중간선거 중 텍사스에서 공화당 상원후보를 위한 유세를 하던 대통령이 “나는 내셔널리스트(Nationalist)”라는 선언을 하였다. 애국자, 민족주의자, 국가주의자 라는 뜻을 가진 이 말 속에는 백인 국수주의자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어서, 공석에서는 삼가는 말이다.

이 선언을 함으로써 대통령은 이제는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위선을 지킬 필요가 없는 세상이 왔다는 것을 공표한 셈이다.

지난 수십년 미국에서 인종차별은 극복해야할 과거의 유산이고, 인종차별 행위는 법적,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제재를 받아왔다. 차츰 다인종, 다문화 사회를 관용하는 진보주의 정책이 확대되었고, 그 정책의 결과 중 하나가 대단위의 이민물결이었다.


이런 정치적, 사회적 변화가 미국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침입자들을 불러들인다는 위기감과 좌절감에 가득 찬 백인들에게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라는 구호로 출마한 트럼프는 문자 그대로 혜성처럼 나타난 ‘애국자’였다. 그가 내세운 구호에서 미국을 다시 예전처럼 “백인의, 백인에 의한, 백인을 위한” 나라로 만들겠다는 뜻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현재 미국에서 노골적으로 표면화 되고 있는 외국인 배척, 국수주 의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인간사회의 보편적인 현상이다. 인종, 문화, 언어가 같은 “우리끼리” 어울려 살고 싶다는 것은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욕망이다.

한국에서도 제주도에 상륙한 예멘 난민들을 국민들이 격렬하게 반대한 뉴스나, 외국에서 유입된 노동자들이 내국인들의 직업을 뺏고 있다는 반 외국인 정서가 커지고 있다는 뉴스에서도 외국인 배척이 분명히 나타나있다. 반만년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문화민족 한국인들이 이웃나라인 중국과 일본 사람들을 욕설에 가까운 상소리로 불러온 것도 사실이다.

애국가의 후렴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에 담긴 애족, 애국심은 한국인의 핏줄을 이어받은 사람들에게는 포근한 소속감을 느끼게 하지만, “우리끼리”의 사상이 엄연하게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한국식 “우리끼리”를 굳이 변호하자면, 한국은 미국과 달리 땅이 좁고 인구는 과밀한 상태이기 때문에 타국인들까지 먹여 살릴 여력이 적고, 그만큼 인심이 후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지난 한세기 동안 다른 문명국들에 비해서 비교적 신생국가였던 미국은 기회의 나라, 인권존중의 나라, 참된 민주주의의 나라로서 전 세계의 모범국가로 부상하였고, 수많은 사람들이 와서 살고 싶은 선망의 나라였다. 이런 미국이 갑자기 국경을 닫아 버리고, 이미 뿌리를 내리고 사는 소수민족 이민자들을 이등시민으로 취급하는 백인 국수주의 정책을 직접, 간접으로 추진, 실시하려는 것은 모든 이민자들과 그 후손들에 대한 인권탄압과 다름 아니다.

어느 시사평론가의 지적대로, 150년 전에 미국에 온 아시아 이민들의 7대손, 8대손들이 아직도 “너 어디서 왔니?”라는 질문을 받고, 한 세대 전에 이민 온 유럽 백인들은 “우리들” 로 환영을 받는 위선과 모순은 막아야 한다. 물론 부유하고 인심 좋은 나라라도 국경이라는 것이 있는 만큼,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난민, 불법이민들을 무조건 받아들일 수는 없다. 어느 당이 집권해도 이민, 난민 문제는 인도주의와 국가주의 사이에서 합리적인 정책을 찾아야 하는 난제이다. 이번 선거는 끝났지만 미국정치에 대한 소수민족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꼭 필요한 이유이다.

<김순진 교육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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