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성실신고’가 답

2018-12-1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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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법무부가 한국에 거액의 금융계좌를 갖고 있으면서도 이를 숨긴 한인을 상대로 최근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한국 내 금융계좌 신고와 관련한 한인들의 관심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피소된 한인은 한국에 150만 달러를 예치해 놓고도 이를 제대로 신고하지 않아 ‘해외금융계좌신고법’(FBAR)을 위반했으며, 이에 따른 벌금을 부과 받고도 이를 제때 납부하지 않아 연방정부로부터 소송을 당한 것이다.

FBAR은 미국에 183일 이상 거주하는 모든 개인과 단체들은 전년도에 보유하고 있던 해외금융계좌의 합계가 1만 달러를 초과할 경우 이듬해 4월15일까지 이를 재무부에 보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재무부는 이 규정을 지난 1970년대 만들었지만 단속과 감사인력 부족 등의 이유로 아주 오랜 기간 유명무실한 채로 남아 있었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 국가들 간에 금융정보 교환이 활발해지면서 FBAR 위반 단속도 본격화됐다.

국가들 간 금융정보 교환의 시발은 2007년 스위스 은행이 캘리포니아의 한 부동산 재벌의 탈세를 도운 것을 연방국세청이 적발하면서부터였다. 국세청은 이 은행 조사를 통해 스위스에 비밀계좌를 가진 미국인이 5만 명을 넘고 액수만도 150억 달러에 육박한다는 것을 알아내고 그 명단을 미국에 넘길 것을 요구했다. 미국과 스위스가 몇 년 간 공방을 벌인 끝에 스위스 정부는 결국 비밀계좌를 가진 미국인 7,500명의 명단을 미국에 넘기기로 합의했다.


이 케이스를 계기로 국가들 간의 금융계좌 정보교환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연방국세청은 해외금융계좌 신고가 세수증대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을 발견했다. 해외금융계좌 소지자들의 자진신고를 유도하고 그에 따른 금융소득세를 거둬들였다. 2009년 실시한 1차 자진신고를 통해 1만5,000명으로부터 거둬들인 돈만 30억 달러에 달했다.

짭짤한 세수에 맛을 들였는지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0년에는 외국 금융기관들에게 미국 납세자 관련 금융정보 보고를 의무화하고 이를 어기는 기관에 대해 징벌적 벌금을 부과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 ‘해외금융계좌 납세협력법’(FATCA)을 통과시켰다.

한인들의 경우 대부분 이런저런 이유로 한국에 계좌 한 두 개씩은 가지고 있다. 미국에 오기 전부터 가지고 있던 것일 수도 있고 부동산 관리를 위해 혹은 부모로부터 증여받은 돈을 보관하기 위해 개설한 계좌도 있다. 해외금융계좌 단속 초기 이런 한인들은 한국계좌를 신고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놓고 적지 않은 고민들을 했다. 회계사들도 별 뾰족한 답을 주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답이 명확해졌다. 성실하게 신고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2016년 한국과 미국 사이에 금융정보 교환협정이 체결됨에 따라 한국 내 계좌를 숨기는 게 더 이상은 불가능하게 됐다. 이미 2년 치 정보가 미국 측으로 건네져 현재 감사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머지않아 위반사례들이 속속 쏟아져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미국인들의 해외금융계좌 신고 건수는 지난 2015년 100만 건을 넘어섰다. 지난 수년 동안 매년 평균 17%씩 늘어났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어리석음은 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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