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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의 기억은 조작되었다

2018-12-06 (목) 케이 김 정신건강 카운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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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 김 정신건강 카운슬러

달콤한 첫 키스의 추억을 떠올리면 아직도 그 느낌이 선명하다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그 생생한 기억이 실은 각자가 지어낸 허구였을 수 있다고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많은 이들이 기억이란 뇌 한쪽 서랍에 차곡차곡 쌓아두었다가 필요할 때 열어보는 캡슐형 저장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첫사랑 연인의 긴 속눈썹에 먼지 한 톨이 내려앉은 모습이 마치 밀랍에 낙인을 찍은 것처럼 마음에 각인되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기억을 연구하는 인지심리학자들은 기억이라는게 컴퓨터처럼 사건을 입력, 저장하고 필요할 때 인출하는 과정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 실험을 통해 증명한다. 기억은 지식이나 감정에 따라 원래 대상과 다르게 저장하고 나중에 기억을 꺼낼 때도 상황에 맞게 재구성한다는 것이다.


NBC 인기드라마 ‘법과 질서’(Law & Order)의 에피소드로 나왔던 ‘가짜기억증후군’은 딸의 왜곡된 기억으로 시작된다. 우울증 치료를 받으면서 과거를 회상하는 딸이 ‘어릴 적 아빠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라는 거짓 기억을 본인도 인식하지 못한 채 만들어낸다. 뿐만 아니라 진술이 거듭될수록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던 상황을 덧붙이고 세부 정황까지 묘사하게 된다. 아버지는 모든 것을 잃은 채 기소되었고 결국 딸에게 살해당한다는 스토리.

비슷한 사건들은 실제 법정에서도 일어난다. 여러 법정의 범죄심리 증거 케이스에서 활약해온 엘리자벳 롭터스 UCI 교수는 가짜기억과 관련된 수많은 실험을 통해 인간의 기억이 조작, 왜곡되며 상황에 맞게 재구성된다는 이론을 증명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무고한 용의자를 지목, 범인이 확실하다고 말하는 증인들이 거짓말쟁이라는 것은 아니다. 목숨 걸고 자신의 증언이 사실이라고 하는 주장을 우리가 믿어야하는게 진정 두려운 일이다”

법정사례 가운데 증인의 왜곡기억으로 인한 충격적 사건의 주인공이 스티브 타이터스이다. 롭터스 교수가 2013년 한 강연에서 소개했던 사건의 결말은 매우 비극적이다.

“스티브가 약혼녀와 저녁식사를 한 뒤 바래다주는 길에 경관이 차를 세웠다. 며칠 전 일어난 강간사건의 범인 차량과 같은 차라는 이유에서였다. 스티브가 범인과 약간 닮은 듯했는지도 모른다. 경관은 그의 사진을 찍어 포토라인에 올렸고 피해자는 범인과 비슷하다고 지목했다. 검찰이 그를 법정에 세웠을 때 피해자는 자신있게 말했다. 저 남자가 바로 범인이라는걸 100% 확신합니다! 유죄평결을 받고 수감된 스티브는 나중에 지역신문 기자의 도움으로 진범을 찾아내 5년간의 억울한 수감생활 후에 석방됐지만 석달 후 스트레스성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어떻게 강간 피해자의 기억이 ‘비슷한 것 같다’에서 ‘절대 확신한다’로 바뀔 수 있는 것인지, 심리학자들은 지금도 여러가지 실험을 통해 ‘기억’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하버드대 심리학교수인 대니얼 섹터 박사는 그 원인을 일곱가지로 나누어 설명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약해지는 망각의 문제 ▲애초부터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서 장기기억으로 저장이 안 된 방심의 문제 ▲기억을 저장은 했는데 인출이 제대로 안 되는 기억 막힘의 문제 ▲불쾌한 경험은 누르고 좋았던 것만 유지하려는 기억 편향의 문제 ▲외부 영향에 의해 기억이 만들어지는 피암시성의 문제 ▲공포스럽거나 모욕적인 경험을 잊으려 해도 자꾸만 생각나는 PTSD와 같은 기억 지속성의 문제 ▲뒤죽박죽 뒤섞인 기억들이 전혀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귀인오류의 문제 등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아름다웠던 나의 첫사랑 기억은 사실일까, 감정과 추억으로 채색된 허구일까?

<케이 김 정신건강 카운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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