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짜 학위의 유혹

2018-12-06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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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캐롤라이나에 본교를 뒀다는 한인 설립 ‘헨더슨 신학대학교’가 “정부로부터 어떤 인가도 받지 않은 채 학위를 남발해 왔다”는 이유로 한인학생들에 의해 사기혐의로 피소되면서 가짜 학위 실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문제가 된 헨더슨 신학대학교 이사장은 ‘템플턴 대학’라는 유령대학을 앞세워 한국에서 학위장사를 하면서 거액을 챙겨오다 적발돼 올 초 구속된 바 있다. 경찰 수사 결과 ’템플턴 대학‘은 학교가 아닌 일반회사로 등록돼 있었으며 학위도 아무런 효력이 없는 휴지조각에 불과했다.

가짜 학위를 내세워 학생들을 모집하고 학위를 남발하는 학교들을 ‘학위공장’(diploma mills)이라 지칭한다. 엉터리 학위를 마구 찍어 내는 곳이란 뜻이다. 학위공장이 비단 한인사회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사회에서도 이런 가짜학위 남발 학교들은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한 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 내의 학위공장은 400여개에 달한다. 가장 많은 주는 캘리포니아로 거의 150개에 육박하며 그 다음은 하와이로 90개를 훌쩍 넘는다. 3위는 워싱턴 주로 87개이다. 미국 내 학위공장들이 벌어들이는 돈은 연간 2억 달러에 달하며 이들이 매달 수여하는 박사학위만도 500개가 넘는다.


이들은 교육부의 정식 인가를 받지 못한 기관들임에도 마치 학위가 유효한 것처럼 학생들을 속이는 경우가 많다. 물론 가짜인 줄 알면서도 스펙관리용으로 이를 ‘구입’하는 ‘고객’들도 적지 않다. 미국사회에서도 학위는 수입과 직결된다. 학사학위 소지자는 고졸보다 평균 85%를 더 벌고 석·박사 학위 소지자는 학사보다 45% 수입이 더 많다. 가짜 학위의 유혹이 클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역대급 가짜학위 공장의 소재지는 미국이 아니다. 3년 전 유명 소프트웨어 업체로 알려진 한 파키스탄 기업이 실제로는 전 세계 고객들을 대상으로 가짜 미국 대학과 고등학교 학위를 팔아온 학위공장이었음이 밝혀져 충격을 안겨줬다. 직원을 무려 2,000명이나 고용한 에그젝트(Axact)라는 이름의 이 회사 핵심사업은 소프트웨어 개발이 아니라 학위장사였던 것이다. 이 사기회사에 천문학적 수입을 안겨준 고객의 대부분은 중동사람들이었다.

한국 또한 규모가 큰 가짜학위 시장이다. 세계 5위라는 조사도 있다. 중국 등 다른 아시안 국가들도 만만치 않은 시장이다. 미국 서부 주들에 학위공장이 밀집해 있는 것은 아시아 지역과 가까운 데다 아시안 인구가 많다는 사실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가짜 학위 수요는 탐욕의 산물이다. 취업과 처우 등 현실적 이득을 얻는 발판으로 이용하겠다는 계산에 더해, 가짜 학위를 통해 후광을 만들어 보겠다는 잘못된 욕망도 수요를 부추긴다. 이번에 문제가 된 헨더슨 신학대학교 학위 소지자 가운데 전직 뉴욕한인회장 등 단체장과 한인 목사들이 많이 포함돼 있는 게 이것을 말해준다.

특히 한국의 목사들은 미국 산 가짜 학위의 주 고객들이다. 박사학위 가운을 입고 설교하는 목사가 있다는 웃지 못할 얘기까지 들린다. 박사학위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큰 교회 목회자로서 권위가 선다고 여기는 한국교회의 잘못된 인식이 빚어낸 촌극이다. 이런 목사들이 얼마나 진실 된 설교를 할지 의문이다. 한때의 유혹 때문에 구입한 가짜 학위가 있다면 꺼낼 생각 말고 장롱 속에 평생 묻어두길 부탁한다. 그것이 최소한의 양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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