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대통령의 손편지

2018-12-0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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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H.W. 부시는 44명 미 대통령 중 20위로 랭크되었다. 지난해 C-스팬의 역사학자 서베이 결과다. 금년 정치학자들 조사에서도 17위에 머물렀다. 국내외 문제 대처능력, 리더십, 미래 세대를 위해 남긴 도덕적·사회적 유산 등에 대한 평가였다. 그러나 만약 대통령의 ‘품위’를 평가 기준으로 했다면 그의 순위는 훌쩍 뛰어 올랐을 것이다.

41대 대통령 부시는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스타’ 정치인과는 거리가 멀었다. 전임 로널드 레이건처럼 ‘위대한 소통자’도 아니었고, 후임 빌 클린턴처럼 열정적인 웅변가도 못 되었다. 그러나 그는 늘 정파나 개인보다 국가에 대한 충성이 앞섰던 사명감 투철한 공복이었고, 겸손하고 신중하며 타인을 배려하는 예의바른 ‘좋은 사람’이었다.

4년의 대통령을 포함해 25년 공직생활을 통해 그와 함께 일했던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는 ‘젠틀맨 조지 부시’의 품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그가 치열한 선거전 끝에 재선에 실패한 후 백악관을 떠나던 날 젊은 라이벌 클린턴에게 남긴 손편지였다.


“친애하는 빌에게”로 시작되는 편지는 텅 빈 집무실에 홀로 앉아 자신이 4년 전에 느꼈던 ‘경이와 존경’을 그도 느낄 것이라며 ‘정적’이 아닌 다음 대통령에게 겸손하게, 진심을 담아 보내는 성원이었다.

“…당신은 매우 힘든 날도 겪게 될 것입니다.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비판으로 더욱 힘들 수도 있을 겁니다. 난 조언을 할만한 훌륭한 사람은 아니지만 비판 때문에 좌절하거나 코스를 벗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이제 당신의 성공은 우리나라의 성공입니다. 난 당신을 열심히 응원할 것입니다. 행운을 빕니다”

부시 역시 약점도 많고 흠집도 적지 않은 정치가였다. 전쟁 영웅, 연방하원의원, 유엔대사, 중국 특사, 공화당 전국위원장, CIA국장, 부통령 등 화려한 이력서가 말해주듯 풍부한 경험을 갖추고 백악관에 입성하기까지 이념의 실현보다 절제와 중도를 택해 종종 ‘소심한 겁쟁이’로 치부되었고 오랜 2인자 자리에서 ‘투명인간’으로 낙인찍히기도 했으며 1988년 당시로선 상당히 네거티브 했던 대선 캠페인으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대통령 취임 후엔 온건한 외교정책으로 냉전시대를 종식시키고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땐 국제 연합군을 구축해 신중하면서도 치밀한 ‘사막의 폭풍’ 작전을 성공시켰지만 경기침체에 발목 잡혀 재선에 실패한 그는, 그러나 퇴임 후 빌 클린턴과 정파를 초월한 우정을 이어가며 재난 구호에 앞장 서는 등 미국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아 왔다.

정치현실과 이념장벽에 부딪쳐 실현되지 못 했지만 “보다 친절한 미국, 보다 온화한 세계”를 만들어가는 실용적 보수주의를 추구하며 “높은 도덕적 원칙을 따르지 않으면 미국은 미국이 될 수 없다”고 대통령 취임사에서 강조했던 그는 그 원칙을 실천하려고 노력했던, 요즘 시대에선 ‘멸종 위기에 처한’ 리더였다.

지난 30일 94세 전 대통령의 부음이 전해졌을 때 미 국민들의 마음에 그립게 와 닿은 것은 업적의 공과 과 보다는 그의 따뜻하고 진실했던 인품, 지금은 실종된 ‘대통령의 품위’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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