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남 탓보다 준비를 먼저

2018-12-01 (토) 임지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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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계를 후끈 달궜던 미국 중간선거가 끝났다. 국민들은 공화당에게는 상원을, 민주당에게는 하원을 쥐어주었다. 트럼프 대통령을 싫어한 사람들과 민주당 지지자들은 8년 만에 하원을 장악한 것을 가지고 트럼프 대통령이 졌다고들 한다. 정말 그럴까. 전문가들의 견해는 좀 다른 것 같다.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이 선전했다고 한다.

2016년 대통령 경선부터 지금까지 트럼프 대통령을 호의적으로 보는 미디어는 별로 없다. 그는 공화당 내에서도 돌연변이였다. 게다가 CNN 등 미국 메이저 언론들과 각을 세우면서 더 이단자 취급을 받고 있다. 더불어 ‘미국 우선주의‘를 외쳐대는 트럼프 대통령은 외국 언론들한테서도 냉대를 받는다.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 소속 한인 앤디 김이 현직 공화당의원을 물리치고 하원의원으로 당선됐으니 ‘Blue wave’가 밀려온 것은 틀림없다.

이번 중간선거에서 확연하게 드러난 추세는 고학력 고소득층의 도시와 부유층이 거주하는 교외지역은 민주당이 모두 싹쓸이를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여성들의 약진이었다. 우먼파워는 투표율에서도 바람을 일으켰다. 이번 선거에서 36명의 새 여성하원의원이 당선돼 하원은 435명 중 거의 4분의 1인 102명을 여성으로 채우게 됐다. 이번 중간선거를 통해 연방의회는 성별은 물론 인종적, 종교적으로 훨씬 큰 다양성을 갖게 됐다.


미국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도시는 더 이상 백인들의 보금자리가 아니다. 그들은 파도처럼 밀려오는 돈 많은 이민자들과 흑인, 대다수의 소수민족들에 떠밀려 점점 시골로 쫓겨 가고 있다. 뉴욕에, 시카고에, 보스턴에, LA에, 샌프란시스코에 얼마나 많은 백인들이 살고 있는가. 대도시는 찬란한 네온불빛과 함께 이민자와 여러 소수민족들로 주인이 바뀌어가고 있다.

미국의 낙후된 주들, 특히 중부 쪽을 여행하다보면 그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다. 많은 도시가 비어있다. 각 주의 주도라든가 이름이 좀 알려진 도시들도 오렌지카운티의 작은 도시 인구만큼도 안 되는 곳이 많다. 주민들은 대부분 덜 교육 받고 소득이 낮은 백인들이다. 그들은 순진하고 선량하고 친절하다.

그러나 그들이 착하다고, 선량하다고, 참고 산다고 소외감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다. 네브라스카나 아이오와 캔사스 주의 농촌에는 자신들의 생활수준이 25년 전과 같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도시 사람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캘리포니아에 지천인 유명백화점들이 그곳에서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렉서스나 벤츠도 손가락을 꼽을 정도다. 그런 순박한 사람들을 보며 내가 여기서 누리고 사는 호사에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미국의 50개 주중 특히 캘리포니아는 민주당의 안방이다. 내가 사는 오렌지카운티는 이번 중간선거에서 불루 웨이브가 싹쓸이를 했다. 믿었던 하원 후보 영 김도 무너졌다. 캘리포니아 전부가 파랗다. 여름엔 시원하겠지만 밤과 겨울 찬 공기에는 피곤을 녹여줄 따뜻한 빨간 불꽃도 필요하다.

소수민족들의 진출이 두드러졌던 이번 중간선거에서 많은 한인들도 출사표를 던졌다. 정당을 떠나 한국 사람이란 이유로 물심양면으로 그들을 지원한 분들도 많다. 나도 내 구역이 아닌 시의원에 출마한 후보의 모금에 참석해 도네이션을 했다.

그런데 어느 곳에서 그분과 얼굴이 딱 마주친 적이 있다. 그런데 그분은 눈 한번 까딱하지 않고 모른 체 했다. 자기 구역 투표자가 아니어서인지, 도네이션이 적어서인지 모르겠다. 그 모든 것을 떠나 따뜻한 인사 한번 할 줄 모르는 사람이 과연 누구를 위해 일을 하겠는가. 그분은 실패했는데, 당선 되지 못한 이유를 백인들의 벽 때문이라고 했다.

왜 그는 마이너리티란 신분을 내세워 실패의 원인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는 것일까. 앞으로 2년 후면 또 총선이 있다. 네 탓 남 탓 하지 말고 후보로서의 자격을 먼저 갖췄으면 좋겠다.

<임지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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