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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위협하는 인종주의자들

2018-11-07 (수) 이형국 정치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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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국 정치철학자

1861년 남북전쟁은 노동력 부족으로 발생한 동족간의 참혹한 내란이었다. 남부 대지주들이 노예문서를 통해 흑인들을 독점하고 있어 북부 산업가들은 상대적으로 노예 해방이 절실했다. 애당초 이 전쟁에서 노예 인권은 중요하지 않았고 링컨 또한 남과 북으로 국가가 분리되는 것을 우려해 노예 해방을 지지한 것뿐이다.

흑인들은 남북전쟁이 끝난 후 노예제로부터 해방되었지만 인종차별주의자들은 그들 사이를 구별하는 색채를 입법화하기 시작했다. 공립학교와 주거단지 버스 기차 등 공공장소에서 흑·백 분리는 합법화되었고, 심지어 식당·화장실 사용뿐만 아니라 인종 간 결혼까지 금지했다.

1963년 8월 25만명이 참여한 워싱턴 평화행진에 고무된 케네디 대통령은 사회통합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민권법 제정을 추진하다 그해 11월 텍사스, 댈러스에서 암살되었다. 후임자 존슨 대통령은 상원의원들을 설득해 1964년 ‘민권법’을 통과시켜 공공시설과 장소, 고용 그리고 교육에서의 흑백차별이 금지됐다. 민권법의 제정은 민권운동의 승리를 의미했지만 현실에서는 차별행위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다. 1965년 8월 LA 왓츠에서 흑인청년에 대한 경찰의 과잉진압에 항의하는 폭동이 일어나 6일간 계속됐다. 1967년에는 전례 없는 인종폭동의 물결이 미국을 다시 한 번 뒤흔들었다. 71개 도시에서 68건의 인종폭동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 것은 1968년 테네시, 멤피스에서 일어난 마틴 루터 킹 목사 암살이다. 이는 최악의 혼란을 야기했고 7만5,000명의 연방군과 주방위군이 진압에 나서야만 했다.

폭동이라 불리는 거의 모든 사건은 빈곤과 열악한 교육환경, 그리고 불평등을 생산하는 제도적·문화적 차별에서 촉발된다. 흑인들의 투쟁은 그들의 영혼을 되찾기 위한 숙명적인 저항이었다. 이 투쟁의 한쪽에는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주도하는 비폭력과 인종차별 철폐의 주창자들이 있었고, 다른 쪽에는 흑인 공동체를 식민지로 취급하며 오만한 악취를 풍기는 백인 우월주의자들에게 폭력과 분리주의를 내세웠던 말콤 X와 그를 추종자들이 있었다.

미국인들이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명예·성실·봉사·희생이라는 ‘사회적 자본’은 인종차별과 수많은 전쟁으로 이미 산산조각이 나서 퇴색되어 버린 지 오래다. 그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반 이민정책, 보호무역, 인종차별 정치행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 보이며 세상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

정치학자 로버트 퍼트넘이 비판했듯이 미국은 다인종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결합’(bonding)과 ‘연결’(bridging)을 진정성 있게 표방하고 있지 않다. 지금 미국이 필요한 것은 도덕적 가치를 포함해 수많은 다른 인종적·종교적 다양성 가치들을 수용하는 ‘열린 사회’로 가는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원하고 요구하는 방식으로 국가를 운영하고 이들의 가치와 이익을 위한 정책과 법률을 통과시켜야 한다. 소수 기득권층이 선호한 방향으로 선물을 쏟아 내도록 방관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호락호락 권력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또 인종차별주의자들은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며 꿈틀대고 있다. 올바른 시민의식으로 악취를 풍기는 싹들을 잘라내야 한다. 과거 미국의 영향력을 되찾기 원한다면 시민들이 열린 사회로 가는 선택을 해야 하다. 그 첫번째 과정은 정치적 절차에 빠짐없이 참여하는 것이다.

<이형국 정치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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