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냉면’이 버즈워드인 까닭은…

2018-11-05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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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의 ‘버즈워드’(buzzword-유행어)를 선정한다면…. 그 유력한 후보는 아무래도 ‘냉면’이 아닐까.

한마디로 점입가경이다.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이란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북한의 이선권이 지난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당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인들에게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갑네까”란 폭언을 퍼부었다는 주장이 국정감사장에서 제기됐다.

‘대한민국을 도대체 무엇으로 보고…’ 분노가 들끓었다. 파장이 커진 것이다. 그러자 여권은 아예 그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서둘러 물 타기를 해가며 수습하려들고 있어서 하는 말이다.


가관도 이런 가관이 없다. 이선권의 폭언 에피소드는 그런데 은연 중 새삼 두 가지 경각심을 일깨워 주고 있는 것 같다. 그 하나는 북한이란 나라는 도대체 어떤 나라인가 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문재인 외교의 현주소다.

정상국가인 양 꽤 그럴듯하게 포장돼 보인다. 평창동계 올림픽이후, 그리고 남북, 미-북 등 있단 정상회담 이후 김정은의 북한체제는. 실상은 과연 어떤가.

“본래부터 제대로 된 사회주의 국가도 아니었다. 굳이 분류한다면 스탈린주의의 탈을 쓴 전제군주국가가 북한의 진짜 모습이다.” 북한 전문가 안드레이 란코프의 정의다. 그러니까 공산주의 전체주의에서 변이된 체제가 권력 세습 3대째인 북한이란 거다.

이 체제는 철저하게 김일성에 의해, 김일성을 위해 만들어진 수령유일주의 체제다. 이 북한체제와 가장 흡사한 체제는 천황일가의 만계일통을 내세운 과거 일본의 군국주의체제다.

북한의 다른 얼굴은 ’마피아국가‘다. 단순한 클렙토크라시(kleptocracy-도둑체제)를 넘어서 정권이 나서서 마약밀매에서, 매춘, 사이버공격을 통한 절도 등 온갖 범죄에 나서고 있다.

실패한 국가에, 범죄집단인 북한체제의 생존수단은 주민에게 ‘절대적 공포(absolute terror)’를 주입시키는 거다. 그 필연적 결과는 처절한 인권유린이다. 고문에, 처형에, 정치범 수용소. 그도 모자라 여성들은 상시적으로 성폭행 위험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북한의 실상이다.

오만방자하기 짝이 없는 이선권의 발언을 통해 부지불식 간에 드러난 것은 북한이란 체제의 그 야만스런 속성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그 체제의 3대 세습 수령이다. 그 김정은은 그런데 다르다는 거다. 아주 예의바르고 신실하다. 북한의 비핵화를 진정으로 바라고 있다. 그 점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니 확신한다. 미국이, 서방세계가 그 사실을 믿어야만 비핵화도, 한반도 평화정착도 이루어진다.

김정은 대변인. 아니 ‘김정은의 의사를 전 세계에 전파하는 전도사’라고 할까. 마치 그런 사명을 지닌 양 미국행을, 또 저 멀리 유럽방문을 마다하지 않았다. 문재인 외교의 알파와 오메가가 그것이다. 결과는 참담한 실패다.

“트럼프 행정부와, 주요 싱크 탱크, 그리고 미 주류언론, 이들은 모두 북한의 김정은에 대해 쏟아 부었던 분노(indignation)를 집단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에게 돌리고 있다.” 국내 극우파 유튜브에 떠도는 말이 아니다. 미국언론, 그 중에서도 진보계의 대변지 격인 내이션(Nation)지 보도다.

그 터닝 포인트를 지난 9월14일 그러니까 판문점 남북연락사무소 개소 시점으로 보고 있다. 미 국무부는 유엔 제재위반 가능성을 들며 사무소 개소를 서둘지 말 것을 공개적으로 요청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북한과 합의한 원안대로 밀고 나갔다.

‘한미동맹보다 북한과의 우리민족끼리의 노선을 더 중시’한다는 점을 분명히 알린 것. 이후 문재인 정부는 일사천리로 ‘going my way’를 밀고 나갔다. 워싱턴 조야에서 분노는 확산되면서 이제는 진보진영 인사들조차 문재인의 행보에 극히 회의적이란 보도다.

그런 워싱턴의 기류를 간파해서인가. 문재인 대통령은 보다 진보적인 유럽국가 순방에 나섰다. 뭐랄까. 유럽을 대상으로 일종의 반미(反美) 공동전선 구축에 나섰다고 할까. 반응은 그러나 부정 일색이었다. 기대했던 프랑스에서도 당초 목적과 상반된 답을 듣게 된 것.

북한은 인권탄압에 핵 장난을 치는 위험한 나라라는 것이 유럽 국가들의 여전한 시각이다. 그러니까 김정은은 믿을 만하다는 생각은 문재인 대통령의 혼자 생각으로 유럽 국가들이 한국과 손잡고 미국 견제에 나서줄 것이란 기대 자체가 허황된 사고였음이 입증된 것이다.

“문재인 외교는 서방세계 어느 국가도 동의하지 않는 ‘나 홀로’ 외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의 일방적 폭주는 계속 될 것 같다.” 한국문제 전문가 로버트 켈리의 전망이다. 무엇을 근거로 나온 전망인가.

촛불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고 있다. 거기다가 김정은과의 두 차례 정상회담을 통해 ‘친미, 친일, 그리고 산업화 세력으로 구분되는 한국의 보수세력은 이제 청산됐다’는 운동권식 판단이 겹쳐졌다. 거기서 비롯된 게 문재인 외교라는 진단에서다.

그런데다가 좌파의 특징은 자신의 이상을 성역시 함으로써 이념으로 충만한 정책이 재앙을 불러와도 과오를 부인한다. 그 맥락으로 볼 때 일방성의 폭주는 필연수순이라는 거다.

여기서 이야기를 이선권의 냉면 폭언으로 되돌려 본다. 그 발언이 지닌 또 다른 함의는 무엇일까. 제 발로 찾아와 굴종적 자세를 보이고 있다. 그 문재인 정부를 우습게보고 있다는 것은 아닐까. 그러니까 완성된 핵전력에 남한정부가 굴복했다는 평양 측 나름의 진단과 함께.

절로 한숨이 나오는 요즘이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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