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자연을 간직한 악기

2018-11-02 (금) 손화영 / 가야금 연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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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조성진의 피아노 콘서트에 다녀왔다. 조성진이 첫 곡으로 선택한 드뷔시의 영상 1집 중 물에 비친 그림자를 시작하는 그 순간, 마치 전 곡이 눈앞에 영상으로 펼쳐진 기분이 들어 짧게 터져 나오는 탄성을 조용히 삼키려 무던히도 애를 썼다. 콘서트가 중반 이후에 접어들었을 무렵 조성진이 완벽하게 연주하는 그 아름다움은 차치하고서라도 피아노가 가진 그 정확하고 정교한 음에 부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런 생각들은 마지막 곡인 쇼팽의 소나타를 연주하는 순간까지 복잡 미묘한 감정으로 내 머릿속을 헤집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매번 가야금 연주회를 할 때마다 공연장의 마이크를 체크하고 심지어는 그날 온도와 습도가 어떤지, 공연을 앞두고 새 줄로 조율한 내 가야금의 줄 상태는 어떤지를 꼼꼼하게 점검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야금은 흔히 자연을 담은 악기라고 한다. 좋은 악기를 하나 만들기 위해서 30년 이상 된 조선 오동나무를 선별하여 자연 상태에서 비바람과 눈, 햇빛 등을 맞도록 최소 5년 이상을 놔두고 삭힌 후 그중에서 울림이 좋고 치밀한 밀도를 가진 나무를 골라 아주 정교하고 세심한 과정을 거쳐 만든다.


그런 까닭에 서양악기에 비해 열과 습도에 민감하게 반응을 한다. 팽팽했던 줄은 수많은 연습을 거치며 느슨해지고 처음의 맑고 고운 소리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 둔탁해지기도, 또 날카로워지기도 한다. 그렇기에 연주 중에도 안족을 부지런히 움직이며 조율을 해야 한다.

스타인웨이의 완벽한 음에 대한 부러움은 잠시 묻어두고, 이런 번거로움에도 가야금이야말로 자연을 닮은, 인간의 내면을 가장 훌륭히 표현할 수 있는 악기라 생각해본다.

<손화영 / 가야금 연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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