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스크린 중독

2018-10-25 (목) 문일룡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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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중독

문일룡 변호사

최근에 스크린에이저스(Screenagers) 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았다. 페어팩스 카운티의 한 고등학교에서였다. 이 영화는 벌써 여러 해 전부터 심각한 문제로 자리 잡은 스크린 중독을 다루고 있다. 제작자는 여자 의사인데 자신의 두 자녀들의 스크린 과다 사용을 보면서 신체, 정신 건강 뿐 아니라 가족을 위시한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에 주는 나쁜 영향에 대해 설파하고 있다.

그러한 스크린에는 스마트 폰을 위시해 컴퓨터, 그리고 TV가 포함돼 있다. 그런데 우리의 자녀들은 하루 평균 6시간 반이나 스크린을 사용한다고 한다. 주의집중 시간도 6초에 불과하다고 한다. 바로 옆에 있는 친구와도 스마트 폰으로 대화하고, 집 안에서 식사 시간 통지도 텍스트로 하는 게 이제는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상황이다. 그래서 이 스크린 중독의 시대에 자라는 청소년들이 대면 대화나 교류를 어색해 하는 정도에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이 영화는 스크린 사용에 적절하면서도 철저히 적용되는 규칙제정이 필수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러한 규칙제정에 자녀들과의 대화를 병행해야 한다고 한다. 부모가 일방적으로 정한 후 자녀들에게 준수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들과 협의, 설명, 설득을 통해야 한다고 한다.


규칙 위반 시 그에 상응한 벌칙도 있어야 하며, 벌칙 적용은 일률적이어야 한다. 또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제정된 규칙이 부모들을 포함한 가족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부모들이 따르지 않는 규칙을 자녀들에게 강요할 때 예상되는 반응이나 효과는 굳이 따로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사실 나도 스크린 사용에 있어 중독 상태에 빠져 있다. 변호사로서 일 가운데 상당 부분을 컴퓨터 스크린을 통해 하고 있다. 이메일 사용 뿐 아니라 문서를 읽거나 작성도 컴퓨터 스크린에 의존하고 있다. 그렇기에 오후쯤 되면 눈이 흐려지고 두통도 종종 찾아온다. 직업상 스크린 사용을 피할 수는 없지만 가끔 먼 곳을 바라보든지 함으로써 눈과 머리에 주는 스트레스를 풀어주어야 하는데 집중해서 정신없이 일하다 보면 그렇게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컴퓨터 스크린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사실 스마트 폰 사용이다. 이제는 손의 일부가 되어버린 듯한 스마트 폰은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가지고 다녀야 하는 것으로 변했다. 회의장에는 물론 화장실 사용 때나 심지어 수영장에 갈 때도 들고 간다. 한 시라도 떨어져 있을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얼마 전 스마트 폰을 어디다 두었는지 몰라 하룻밤을 없이 지낸 적이 있었다. 그런데 마치 오래 마시던 커피를 끊고 겪었던 금단 증상이 다시 찾아온 듯 했다. 그렇게 불안할 수가 없었다.

최근에 발표된 페어팩스 카운티 공립학교 학생들 대상 설문조사 결과에 의하면 여덟 명 중 하나가 주중에 하루 3시간 이상씩 TV를 시청한다. 여학생들의 비율이 남학생들 보다 더 높다고 한다. 그리고 학교 공부나 활동과 상관없는 컴퓨터, 비디오 게임, 스마트 폰 사용이 매일 3시간 이상인 학생들도 절반이 넘는다고 한다. 여기에 학교 수업이나 집에서 숙제를 위한 스크린 사용 시간을 포함하면 훨씬 더 많은 시간 동안 학생들이 스크린에 시선을 고정시킨다는 얘기이다. 그러니 심각한 수준의 스크린 중독이라 아니할 수 없다.

최근 있었던 실무회의에서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들은 교육감으로 하여금 내년도 예산에 고등학생들 모두가 랩탑 컴퓨터를 하나씩 배정받을 수 있도록 반영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면서 우려를 표명한 부분이 스크린 사용 시간이었다. 이에 담당자들이 적절한 지침을 만들어 각 학교에 내려 보내도록 주문했다.

<문일룡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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