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슬기로운’ 은퇴 준비

2018-10-19 (금) 김정섭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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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선배 기자 두분이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언제나 한 우리에 머물 것 같았던 선배 기자들의 은퇴 선언은 환갑을 눈앞에 둔 내게 적지 않은 충격파로 다가왔다. 은퇴와 관련된 다양한 기사를 쓰면서도 한번도 은퇴 후 생활을 심각하게 그려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연방 정부 센서스 자료를 보면 미국인들의 절반 이상이 61~65세에 은퇴 한다. 이 나이 대를 선택하는 이유는 사회보장 소셜 연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소셜 연금은 사별한 경우(60세부터)를 제외하고는 62세부터 받을 수 있다.

은퇴는 곧 일을 더 이상 하지 않고 쉬겠다는 사회적 선언이다. 일을 그만두면 근로 수입은 없다. 따라서 정부에서 주는 소셜 연금과 그동안 모아뒀던 은퇴 자금, 그리고 각종 투자 수익 등 노년의 느긋하고 여유로운 생활을 유지해 줄 수 있는 든든한 밑받침이 필요하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은퇴를 선언하면 빈곤하고 궁핍한 노년만이 ‘두 눈 치켜뜨고’ 기다릴 게 뻔하다.


많은 한인들이 소셜 연금을 믿는다. 소셜 연금은 정부에서 평생 보장해주는 종신 연금이니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소셜 연금은 은퇴전 수입의 40% 정도만 보충해준다. 실제 안전한 은퇴 생활을 하려면 은퇴전 수입의 80%는 있어야 한다. 나머지 절반은 각자가 조달하던지 아니면 허리띠를 졸라매며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

미국인들의 평균 소셜 연금은 2018년 1,422달러다. 내년에는 물가 상승률에 따라 2.8%가 인상돼 월 평균 1,461달러로 소폭 오르지만 빈곤선을 조금 넘는 수준으로 정부 혜택도 못 받는 애매한 금액이다.

연방정부가 내년에 수입이 없거나 부족한 극빈자에게 줄 생활비 보조금(SSI)은 개인 771달러, 부부 1,257달러다. 물가가 비싼 캘리포니아 등 인구 밀집 주에서는 주정부 차원의 추가 지원금을 준다. 따라서 캘리포니아 극빈자는 개인 931.72달러, 부부 1,664.14달러를 받게 된다. 이런 극빈자에게는 메디케이드라는 건강 보험이 덤으로 뒤따르지만 소셜 연금을 받는 일반인들은 말년의 의료비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심각한 지경에 빠지게 돼 있다.

현재 65세 부부가 평생 쓰게 될 의료비는 28만 달러로 예상된다. 여기에는 장기 간병비용은 포함되지 않아 실제 노년에 써야 하는 돈은 훨씬 많아질 수 있다.

한국 통계청이 2017년말 발표한 2016년 건강수명에 따르면 남자는 약 15년, 여자는 무려 20년 동안이나 건강하지 못한 심신으로 여생을 살아야 한다. 통계청은 남성 평균 수명을 79.3세, 여성 85.4세로 봤다. 반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건강 수명은 남성 64.7세, 여성은 65.2세다.

건강하지 못한 노년에는 그만큼 많은 의료비를 쏟아 부어야 한다는 뜻이다. 오래 산다고 기뻐하다가 말년에 불행한 암흑기를 통과할 수도 있다.

66세 은퇴한 선배는 메디케어와 함께 만기 은퇴 연령이 됐으니 소셜 연금을 100% 받는다. 오랜 직장생활로 은퇴 저축도 조금을 모아뒀을 것이니 과감한 은퇴 선언이 가능했을 것이다.


나는 선배가 평소 은퇴를 언급할 할 때마다 전문가적 식견(?)을 내세워 “직장 은퇴 연령이 없는 미국에서 왜 서두르나”며 만류했었다. 만기 은퇴 연령을 지나 6개월만 더 일을 해도 40대에 직장 은퇴 저축 플랜 401(k) 적립금을 1% 늘리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는 이론을 내세우면서 말이다.

미국 예비 은퇴자들에게 던지는 조언이 있다. ▲은퇴를 늦춰라. ▲후회 없이 많이 모아둬라. ▲장수할 결심이 선다면 소셜 연금은 늦게 받아라. ▲건강해라. 아프면 말년이 지옥이다. 물론 쉽지 않은 말들이다.

지금은 한국을 여행 중인 선배가 해남의 한 사찰에서 ‘템플 스테이’를 하며 찍어 보내준 사진이 너무나 한가롭고 평화롭게 보여 부럽기까지 했다. 옆방에 묶고 있다는 한 외국인 여성과 찻잔을 앞에 놓고 툇마루에 앉아 찍은 사진 속 선배의 얼굴에는 힘들게 일했으니 이제는 쉬어도 된다는 여유로움과 평안함이 엿보인다. “나도 여유로운 은퇴가 가능하려나”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스스로 묻고 있다.

<김정섭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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