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해와 선입관

2018-10-18 (목) 12:00:00 이지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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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와 선입관

이지연 변호사

몇 년 만에 재회한 이모와 사이좋게 배달 도시락을 나눠 먹으며 지인들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오해에 관한 한담을 나눴다. 서로의 편을 들어주며 상대의 불만에 동정을 표해주던 대화의 흐름이 어쩌다 보니 사람의 천성에 관한 토론으로 이어졌는데, 나는 남가주의 한 비행청소년 보호단체에서 전과기록이 있는 여고생 반을 한 학기 동안 지도하는 일련의 교습생활을 하던 수년전의 경험담을 회고하게 되었다.

피어싱, 짙은 화장, 혹은 문신으로 가려져 있던 대다수 학생들의 앳된 얼굴들 사이에 유난히 눈에 띄는 한 소녀가 있었다. 화장기가 전혀 없는 단정한 용모와 옷차림으로 매우 진중하고 조용하게 수업에 임하던 그 소녀는 가끔씩 발표를 하거나 1대1 상담을 할 때면 ‘과연 이 아이가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을까’라는 의문이 생길 정도로 반듯한 생활관과 장래성 있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학기말이 다가올 무렵 나는 그 소녀가 그 반에서 가장 큰 형량을 받아 주정부의 감시를 받고 있는 상태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자신의 어머니에게 흉기로 큰 상해를 가했다고 한다. 미리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더라면 아마도 나는 선입견을 가지고 그 소녀를 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평생을 흉악범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 그 소녀는 적어도 나와 함께하던 매 순간 동안 그저 행복하게 살기를 갈망하는 평범하고 상냥한 16세의 모범생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공포심을 갖게 하던 불행한 관계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찰나의 극단적인 선택의 불찰로 그 소녀와 어머니의 인생역정이 뒤틀렸을 뿐이다.

그녀의 범죄행위를 미화 시키려는 의도는 없지만 나름 도덕적 신념과 종교관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느끼는 한 시민으로서, 그리고 변호사로서 이 세상을 판단하는 한 개인의 평가 잣대는 그저 제한된 인식의 결과물일 뿐 반드시 올바른 진실의 결과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소녀가 근본적으로 악한 기질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믿고 싶지 않았다.

내 이야기를 듣던 이모는 그 소녀의 처지가 유전적인 영향을 크게 받았을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는데 그 소녀를 비롯한 대다수 사람들의 근본적인 성향이 유전요인으로 결정된다는 뉘앙스로 들렸고, 나는 사람의 성격은 환경요인에 지배를 받으며 바뀔 수 있다는 반론을 매우 방어적으로 던지게 되었다.

사실 어느 정도까지는 유전과 환경 둘 다 작용한다는 지론이 서로 비슷했음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논리와 의사전달 과정에서의 견해차이로 언성을 높이게 되었고, 급기야 “네가 아직 덜 살아봐서 모른다. 사람의 기질은 변할 수 없다” “왜 이렇게 비관적이냐”는 논쟁이 오가게 되었다.

법정에서도, 일상생활 속에서도 우리는 역지사지하는 마음보다 일단은 먼저 타인들이 자신을 이해해주기 바라는 경향이 있다. 우리들의 선택이 우선시 되며 정당화되기를 바란다. 자신이 “틀렸음”을 자신 있게 인정하는 태도와 자신이 “옳음”을 증명할 수 있는 능력 중 과연 어느 쪽이 미덕일까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는 목전에 놓인 상황을 주관적으로 해석하여 타인들의 입장이나 그들과의 관계를 정의하게 된다. 당근이 들어가는 반찬 하나를 두고도 이것을 좋아하는 이모가 있다면 싫어하는 내가 있듯이, 특정 주체에 대한 사람들의 인상과 견해가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서로의 인식이 상충되는 가운데 상황과 필요에 따라 공격적이거나 방어적인 반응을 표출하게 된다.

과연 천성이 100% 선하거나 악한 사람이 있을까? 고기를 한 점씩 양보하며 사이좋게 도시락을 나눠먹는 동안에는 서로에게 착한 존재였던 이모와 나도 다투는 순간에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만 하는 미운 존재일 수 있는데.

<이지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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