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메츠 구장의 ‘방탄소년단’

2018-10-13 (토) 민병임 뉴욕지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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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뉴욕 메츠 홈구장 시티 필드에서 힙합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BTS) 공연이 있었다. 열광하는 4만명 관중 속에 기자도 있었다. 금박 수가 놓인 블랙 수트 차림의 멤버 7명이 무대에 등장하면서부터 시티 필드는 음악과 댄스와 함성의 심연 속에 풍덩 빠졌다.

현지 최고 가수들만이 오르는 스태디엄 무대에 한국 가수 최초로 선 방탄소년단이 저마다 개성 있는 색깔로 역동적인 춤과 노래를 보여주자 관중들도 합세했다. 푸르다가 붉다가 한꺼번에 같은 빛을 내는 야광봉을 든 관중석, 5층 꼭대기까지 가득한 글로벌 팬들은 가수와 함께 방방 뛰는데 혹여 스탠드가 무너질까 걱정됐을 정도, 그러나 새로 지어 2009년 개장한 메츠 구장이 워낙 튼튼해 안심이었다.

주위에 한인은 찾기 힘들었다. 20대 백인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보였고 히스패닉, 흑인, 아시안 등 방탄소년단의 팬들은 피부색, 인종과 상관없었다. 워낙 음악소리와 함성이 커서 영어인지, 한국어 가사인지 헷갈리는데 갑자기 한국말 가사가 귀에 들리기 시작했다.


“멈춰서도 괜찮아, 아무 이유도 모르는 채 달릴 필요 없어. 꿈이 없어도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아니, 관중들이 모두 한국말 가사를 따라 하고 있었다. 흥탄소년단, 불타오르네, 뱁새, 쩔어… 모든 노래마다 떼창이 이어졌고, 사력을 다하여 춤을 추던 방탄소년단이 잠시 무대에서 사라지자 관객들은 일제히 “계속 해! 계속 해!”를 한국말로 외쳤다. ‘이런, 잠시 숨 고를 틈도 안준단 말이야? 오늘 저녁 다들 파죽음이 되겠네’ 싶었다.

한참 무대를 달궈놓은 뒤에 리더인 RM이 슈가, 진, 제이홉, 지민, 뷔, 정국 7명의 멤버를 소개하려 하자 관중들이 먼저 합창으로 멤버 이름을 불렀다. 공연 마지막에 흰색 의상으로 갈아입은 7명 멤버가 ‘러브 유어셀프’를 불렀다. 무대 자막에도 ‘LOVE YOURSELF’가 떴다.

지난 9일 한글날 572돌이 지났다. 백성들의 소통을 위해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이 시티 필드의 4만명 타인종 팬들이 소리치는 한국말 함성을 들었더라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났을 것이다.

젊지도 않은 기자가 꼭 방탄소년단 공연을 보려한 것도 빌보드 200 차트 1위를 두 번이나 했다지, 음악성을 세계가 인정했단 말이지, 그것도 한국말 가사로 된 앨범이라지, 타인종들이 먼저 앨범을 샀단 말이지, 왜일까? 하는 궁금증에서였다.

30여곡을 노래하는 세 시간동안 60대 중반 한인남성은 이들의 눈부신 성과에 눈물을 흘렸다. 옆 좌석의 백인 20대 커플이 춤추는데 혹여 방해가 될 세라 양팔을 잔뜩 오므린 불편한 자세로 관람하고도 좋았다는 것이다.

2013년 데뷔한 방탄소년단 7명은 불러주는 방송사가 없다보니 자기들끼리 밥 먹고 작사 작곡하며 노는 것을 유튜브에 올렸다. 사회적 편견과 억압, 청춘의 아픔을 공감한 SNS 세대인 세계의 젊은이들이 “그래, 우리를 알아주는 방탄, 우리가 너희를 지켜주는 아미가 될게” 하여 스스로 지지층이 되었다.


그렇다면 방탄소년단의 경제적 파워는 어디까지일까? 이날 하루 시티 필드 4만 석이 매진됐고 티켓 가격은 최저 200달러에서 최고 3,000달러 이상으로, 시티 필드 1회 공연으로만 600만달러 티켓 매출을 기록했다. 북미투어 15회 공연에 22만명 좌석이 모두 조기판매 됐으니 미국 시장만 순수매출이 900억, 그 외 광고와 야광봉, 머그컵, 인형 등 캐릭터 판매액까지 상품가치는 어마어마하다.

K팝 인기로 한류 관심이 높아지며 세계 각국에서 한국어 학습 수요도 늘어났다. 한국 외교부가 수십 년 동안 이루지 못한 한국문화 홍보를 이들이 단숨에 해냈으니 상품가치는 조 단위로 올라간다.

이날 공연에서 기자가 얻은 것은 에너지다. 극한적이다 할 정도로 치열한 방탄소년단의 공연이 폭발할 것 같은 젊은이들에게 강한 힘을 준 것처럼 아직 살아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고가의 티켓 구입으로 비록 한 달간 점심을 굶어야 할 판이지만, 관객들의 한국말 떼창이 아직 귀에 쟁쟁할 정도로 즐거웠다.

<민병임 뉴욕지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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