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캘리포니아 산불

2018-10-06 (토) 배광자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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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노이로제에 걸렸나보다. 긴박하게 울리는 불자동차 사이렌 소리가 들리면 또 어디서 산불이 난 게 아닌가 하고 긴장한다. 동시에 가슴이 벌벌 떨리고 다리가 후들거린다. 몇 년 전 산불이 우리 집 앞에까지 닥친 후로 생긴 증세다.

우리가 미국에 와서 정착한 곳은 LA 다운타운 북쪽이었다. 두세 번 이사를 다녔지만 그 주변을 맴돌았다. 높은 지역이다 보니 프리웨이를 타고가다 주위를 둘러보면 사방천지가 산으로 겹겹이 둘러싸여 있다. 한국의 산처럼 푸르고 아름답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황량하고 웅장한 멋을 풍긴다. 게다가 집 가까이에 등산코스가 많아 산타기를 좋아하는 내겐 금상첨화였다. 그런데 그 산이 문제가 될 줄이야.

캘리포니아에는 매년 10월 중순 경이면 시원한 가을 날씨가 순식간에 고온 건조해지며 강한 바람이 불어온다. 샌타애나 바람이다. 일종의 계절풍으로 이 바람이 불었다하면 영락없이 대형 산불로 이어지곤 한다. 요즘엔 이 바람과 상관없이 시도 때도 없이 일년 내내 산불이 자주난다.


지난해 겨울엔 역사상 최대 규모의 산불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해 큰 피해를 입었는데 올 여름에는 그 기록을 갈아치웠다. 20여개의 산불이 경쟁이라도 하듯이 앞을 다투어 일어났다. 그 기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서부 캘리포니아 산불 연기가 대륙을 가로질러 동부 뉴욕까지 날아갔다고 한다. 최악의 산불로 비상사태가 선포되기까지 했다.

작은 불씨 하나가 온 산을 태우고 귀한 생명을 앗아간다. 산불은 처음엔 조그맣게 시작해도 뜨거운 바람에 편승하여 산등성이를 타고 순식간에 이산 저산으로 걷잡을 수 없이 확산 된다. 최근엔 산불이 났다하면 이산 저산 정도가 아니라 이 도시 저 도시로 광범위하게 영역을 넓혀간다, 아무리 용감한 소방대원들이 있고 최첨단 소방장비가 있다한들 신명난 무당처럼 펄펄 나는 불길을 잡기엔 역부족이다. 잠자리만한 소방헬기가 진화제를 살포하지만 새 발의 피 정도도 안 된다. 소방대원들은 통제 불능상태에서 온 산이 화염에 휩싸이는 것을 바라만 보며 불이 주택가로 옮겨 붙지만 못하게 주력할 뿐이다.

우리말에 ‘강 건너 불보기’란 말이 있다. 당장 내 코앞에 닥치지 않으면 일단은 마음의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라는 영화를 인상 깊게 본적이 있다. 또 불이라면 빼 놓을 수 없는, 천벌을 받아 마땅한 과거의 인물이 있다. 불타는 로마를 산위에서 내려다보며 시를 읊었다는 네로황제, 그 죄를 기독교인들에게 뒤집어 씌웠다고 하니 얼마나 악랄한가. 그러나 영화 속, 역사 속의 이야기인지라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 산불은 현재이고 실제상황이니 산불 소리만 들어도 간이 콩알만 해진다. 프로메테우스가 천상의 불을 훔쳐 인간에게 전해준 죄로 독수리가 간을 쪼아 먹는 천벌을 받았다는데 그 상흔이 내 간에도 남은 모양이다.

산불은 왜 나는가? 대부분 자연발화에 의한 천재라고 한다. 만일 천재라면 체념해 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막연히 천재라고 핑계 대는 이면에는 환경을 오염시킨 인간의 잘못이 가세한 경우가 많다.

프로메테우스가 훔쳐다 준 불은 인간에게 축복이기도 하지만 재앙이기도 하다. 훔쳐다 준 귀한 불을 인간이 잘못 사용하여 받는 인재만은 어떻게든 막아야 되지 않느냐는 안타까운 심정이다. 또 산불로 인한 매연, 대기오염으로 호흡기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비상이다. 일상화가 되어버린 캘리포니아 산불은 ‘지진은 저리가라’로 공포의 주역이 되어 버렸다. 태풍, 홍수, 가뭄, 지진 등 자연재해로 지구촌이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산불이 또 다른 재앙을 불러올까봐 걱정된다.

<배광자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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