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조심 조심 사다리 안전

2018-10-05 (금) 윤재현 전 미국방군수청 안전감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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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 조심 사다리 안전

윤재현 전 미국방군수청 안전감사관

‘대장장이 집에 식칼이 논다’ 라는 말이 있다. 어떤 물건이 흔하게 있을 법한 곳에 없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평생 안전관리 분야에서 일하다 은퇴한 나는 안전의식이 부족하다. 무슨 일을 하든지 깔끔하게 끝내지 못하고, 불안전하게 한다.

며칠 전 뒤뜰에서 대추를 따다가 사다리에서 떨어졌다. 사다리의 제일 밑 계단에서 시멘트 바닥으로 떨어져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왼손에 찰과상을 입고 허리를 약간 다쳤다. 불행 중 다행이다. 손 다친 것은 곧 나았지만 허리 통증은 오래 계속되었다.

떨어진 원인은 대추를 따고 내려오다가 슬리퍼가 벗겨진 것이었다. 사다리에 올라가면서 고무 슬리퍼를 신다니, 사고를 자초한 셈이다. 차라리 맨발이 아니면 운동화를 신어야 했다.


사다리 사고로 상처를 입거나 장애인이 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나와 같은 노인 합창단에 속한 한 단원은 집 앞의 야자수 가지를 다듬다가 사다리에서 선인장 위로 떨어졌다. 가시에 찔려 왼손에서 3인치 길이의 가시 6개를 두 번의 수술로 제거했다. 얼마나 고통이 심했을까.

그분이 합창단원을 자기 집으로 초청했다. 나는 그 선인장을 한 번 보자고 했다. 작은 축구공만한 선인장은 무시무시하게 큰 바늘 같은 가시로 자기방어를 하고 있었다. 그 선인장과 대화할 수 있다면 “너 과잉방어 했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 날 저녁 식사를 하면서 집 주인에게 “당신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을 체험한 분”이라고 했더니 그분의 얼굴이 상기되었다.

그의 낙상 원인은 사다리 중심에서 몸을 과도하게 내미는 자세로 작업을 했기 때문이다. 사다리 안전 규정에 두 손과 한 발 또는 두 발과 한 손 즉 3면 접촉을 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2인 1조 작업이다. 그러나 남자들은 아내에게 사다리를 잡아달라고 부탁하지 않고 ‘용감하게’ 혼자 작업을 하다가 일을 저지른다.

우리는 항상 사후에 약방문을 꺼낸다. 선인장을 두꺼운 방석으로 덮었더라면, 아내가 사다리를 잡아주었더라면, 두꺼운 가죽 장갑을 사용했더라면 하고 말이다.

한 가지 명심할 것은 어떤 경우라도 지붕 위에 올라가면 안 된다는 것이다. 떨어져 죽거나 다칠 수 있다. 비용이 들더라도 전문인을 불러야 한다. 내가 아는 한 심장전문의는 지붕 위에 올라가서 호스로 낙수 홈통을 씻어내다가 떨어져 팔과 다리에 골절상을 입어 한 달 동안 일을 하지 못했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컸다.

내가 사다리에서 떨어진 후유증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파스를 붙여도 별로 효험이 없다. 한참 앉아 있노라면 아파진다. 엉덩방아의 충격인가보다. 이 아픔은 나에게 경각심을 일으킨다. 모든 일을 조심조심 안전하게 하라고.

<윤재현 전 미국방군수청 안전감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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